나는 작법서에 홀린 듯 끌리곤 한다. 집에는 아예 작법서 칸이 따로 있을 정도다. 출판사 '부키'에서 나온 신간 <4줄이면 된다>는 제목을 보고 내가 그동안 찾아 헤매던 책이란 걸 바로 알았다. '길 잃은 창작자를 위한 한예종 스토리 공식'이라는 카피를 보고 확신한 것이다.
영화 <순정>을 연출한 저자 이은희 감독은 한예종 영화과 수업에서 만점에 가까운 강의평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책에는 감독님의 아낌없는 스토리 노하우가 꾹꾹 눌러담겨 있었다. 단순한 노하우라고 하기에는 더 진지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에 가깝다.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가? <4줄이면 된다>라는 간결한 책의 제목만 보면 단번에 대박 시나리오를 써낼 수 있는 비법서 같아 보이지만, 결코 만만한 책은 아니다. 그 '4줄'을 완성하기 위해 내 안의 수많은 감정과 욕망, 즉 나의 내면을 똑바로 마주봐야만 비로소 좋은 이야기를 길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작법서를 모으고 참고하며 읽어보았지만 대부분이 미국 헐리우드 작가들이 쓴 책을 번역한 것이거나 고전적인 3막 구조의 이론을 이야기하는 것들이 많았다. 이렇게 현재 활동하고 계시는 감독님이자 선생님이 쓴 작법서가 귀한 이유가 그것이다. 중간에 부록처럼 들어있는 'Workshop' 코너도 <대부>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예로 들기 보단 최근 개봉을 했거나 흥행작이었던 작품 (극한직업, 더 글로리 등)을 예로 들고 있어 쏙쏙 이해가 잘 되었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바로 대박을 낼 이야기, 훌륭한 이야기를 완성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참 이야기를 완성해보겠다고 허우적대다 정작 '코어'를 놓치곤 했던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이 책은 이야기를 쓰는 이유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가는 방향을 다시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내가 세상에 공유하고 싶은 질문을 이야기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글을 쓰든, 사실 그게 다가 아닐까.
- 밑줄
솔직히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였다. 책을 정말 깨끗하게 보려고 하는 편인데, 이건 그게 안 됐다. 막 메모도 해가며, 동그라미, 물결, 별표 표시하며 '맞아! 그렇구나!' 하며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야기를 만나고자 한다면 그 무엇보다 앞서 ‘내 것‘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내가 경험하고, 내가 알고,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이 생각보다 ‘상당히‘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정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당신만 알고 있다. 그러니 ‘당신만‘ 쓸 수 있다.- P19
너무 쉽거나 이미 알고 있어도, 또 너무 어렵거나 이해할 수 없어도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정보나 도전을 제공받을 때 가장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P29
작가가 주인공에게 완벽히 몰입하지 못하면 이야기는 자꾸 깊이 가지 못하고 옆으로 간다.- P239
당신에게는 정확한 지표가 되어 줄 ‘1줄‘이 있고, 그 길로 나아갈 내비게이션이 되어 줄 ‘4줄‘이 있으니 걱정 없이 쏟아 낼 수 있다.- 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