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나에게 대체 무엇일까. 간단하지만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 마냥 행복해질 때도 있고 불쾌해지기도 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주인공의 삶이 안타까워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영화보는게 마냥 좋아서, 라기엔 영화는 어느새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영화를 전공하면서 평생 영화를 하는 것을 꿈으로 삼았고 지금도 그 근처를 맴돌며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영화를 만들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만들고 싶지 않다. 꼭 만들어야하나? 세상에 이렇게나 좋은 영화들이 많은데. 그러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비난받기 무서워일수도, 무관심 속에 묻히는 것이 두려워 쉽사리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서른 중반이 되어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하는가 하는 고민에 뚜렷한 답을 내리지 못해 머리가 복잡할 때, 이미화 작가의 <엔딩까지 천천히> 라는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다. 이미화 작가님은 믿고 읽는 작가 중 하나다. 설레는 마음에 배송을 받아 출퇴근길에 틈틈히 읽어내려갔다.
책은 누군가의 고민에 맞는 영화를 한 편씩 처방해주는 방식으로 총 25편의 영화와 고민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 내가 본 영화도 있고 아직 보지 못한 영화도 있었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도 있고. 스물 다섯 명의 고민이 모두 다 내 얘기 같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하는 것도 애매한 (혹은 없는) 재능으로 힘든 것도, 열등감때문에 괴로운 것도 모두 다 지금의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와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내가 어디에서도 털어놓지 못한 마음의 곤란을 털어놓으면, 저자는 다정하고 담백한 어투로 ‘그렇다면 오늘은 이 영화를 보고 편히 잠드는 건 어때요? 이 영화 진짜 좋은데.’ 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보고 싶은 영화들이 많아진 것에 마음이 두둑해져서 행복해졌다. 다양한 고민에 맞는 영화를 추천해줄 수 있는 능력이 못내 부러웠다. 이번주부턴 오랫동안 왓챠 '보고싶어요' 보관함에 들어있던 일본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를 정주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가 혼자만의 고민으로 끙끙 앓고 있다가 어떤 영화 한 편을 보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그날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다면, 영화의 소임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천만 관객이 영화를 보았다는 기록도 중요하지만, 단 한명이라도 그 영화를 통해서 약을 먹은 듯 마음의 통증이 잠시 가라앉았다면. 그건 엄청난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만든 이에게 그것만큼 뿌듯한 일이 또 있을까?
영화를 통해 위로받았던 숱한 날들이 떠올랐다. 결국 그 순간들이 모여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처방전처럼, 그날의 고민에 맞는 영화가 한 편씩 들어있는 이 책을 소중히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잠에 들었다. 오랜만에 걱정없는 밤이었다. 한결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나를 믿고 계속 이야기를 쓰는 일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나의 이야기가 처방전에 쓰일 수 있도록.
- 마음에 담은 문장들
“ 아, 작가라는 직업은 수수하지만 꾸준한 일이구나. 생각하니 이 일이 더 좋아졌습니다.”
“ 긴 터널을 통과한 당신의 인생이 앞으로 아주 뻔하게 흘러가더라도, 제가 그 영화의 관객이 될게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