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상냥한 폭력의 시대
ㄴㅅㅈ 2017/08/05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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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냥한 폭력의 시대
- 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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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 2016-10-10
: 5,935
내가 사는 지금 이 시대에는 누구와 투쟁을 해야 하는 거지? 라고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아. 먼저, 투쟁을 하고 싶은가? 투쟁을 해야 할 대상이 있어야만 하는건가? 라는 질문에는, 선명한 악과의 투쟁이야말로 의미 없는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장 쉽고 값진 방법이기 때문에 투쟁하는 삶은 고난하지만 의미 있기에 투쟁할 대상이 있는 건 나쁘지 않다, 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시절의 민주화운동가들은 좋았겠다, 라고 자주 생각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래도, 그들은 인생을 내던질만한 의미 있는 일이 있던 시대에 살았으니까. 그 선명한 악에 대항해 투쟁하는 데에 일말의 의심을 품을 필요도 없고 그 싸움에 인생을 내던지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사회에도 인류에게도 도움이 되는 분명하게 좋은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정말로 ‘상냥한 폭력의 시대‘라 무언가 폭력을 가하는 존재는 있는 것 같은 데 그게 선명치가 못하다. 물론 지금도 청산해야 할 적폐가 수두룩하고 시선을 조금만 더 길게 던지면 아직도 선명하고 분명한 악들이 드글드글하지만, 당장의 눈앞에 잡히는 무도한 폭력이 보이질 않는 시대인 것 같다. 정말로 ‘상냥한 폭력의 시대‘. 내가 저지르는 일상의 폭력이 투쟁되어야 할 제1의 악이 되는 시대. 좋은 세상이지만 한 편으로는 살아가기 더 힘든 시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렇게 존재하는 상량한 일상의 폭력에 대해 그려놓은 듯하다. 친일파가 아니고 독재에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옆을 돌아보게 하는 책.
왜 나는 소설을 읽는 것일까? 소설이 단지 꾸며낸 이야기라고 해서 현실이 아니라거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꾸며낸 이야기지만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술자리에서 친구의 시답잖은 연애 이야기와 회사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누군가의 현실 이야기보다는 더 재미있고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꾸며낸 이야기를 왜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읽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단지 재미있기 때문,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미있으니까. 너무 지루하고 할 게 없고 시간을 때우고 싶을 때 이야기를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소설을 읽는 제일 큰 의미라면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면, 소설은 시간을 재미있게 때울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독서는 능동적으로 내 눈을 굴려 글을 읽어가야 하기 때문에 직접 영상을 내 눈에 박아주는 드라마나 예능이나 영화보다 수고가 많이 든다. 바로바로 이해되지 않아 머리를 써야 하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시대 배경을 마주할 때는 도통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 있지도 않다. 반면 영화나 드라마는 가만히 앉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쉽게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소설이 재미있기 때문에 읽는다는 것은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뭐, 분명 이야기를 영상으로 풀어가는 것과 음성으로 풀어가는 것과 글로 풀어가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재미가 다르기는 하겠지만 재미 가성비를 따진다면 독서는 그리 훌륭한 방법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시간 없고 정신없고 돈 없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그럼 독서에는 재미가 아니라 효용이 있는 것인가? 소설을 읽는 것이 재미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읽는 것인가? 모르겠다. 왜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는. 그냥 지금 당장에는 다른 삶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지금의 내 삶에는 아무런 기승전결도 없고 대단한 사건을 예견할 복선도 없는 것 같아서.
소설에서는 현상을 보여주기만 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인가?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은 후로 정이현 작가의 책은 꾸준히 찾아 읽고 있다.
밑줄, 생각
41쪽
그녀는 이제 어떤 사랑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상대에 따라 그 단계들을 유보시킬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101쪽
돼지는 다른 돼지와 구별되지 않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는 구절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몹시 슬프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106쪽
나는 가끔 엄마가 딸의 몸무게가 아닌 영혼의 무게에도 관심이 있는지 궁금했다.
과거의 정열과 무관하게 현재 그들의 삶은 몇 모금 마신 다음 뚜껑을 열어놓고 방치한 페트병 속 탄산수 같았다.
119쪽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우리가 공부를 하는 목적은 공부 그 자체가 아니라 결국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인데, 현대의 학교가 좋은 사람을 만드는 곳인지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고 더듬더듬 말했다.
141쪽
아주 오래전이었다.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의 교정을 맴돌며 지겹도록 천천히 늙어가는 생을 상상도 할 수 없던 때. 그런 때가 그녀에게 있었다.
158쪽
언제고 풀리고 말 마법에 대하여 생각했다.
160쪽
최후의 문장이 누구의 것이든 애도는 남아 있는 자의 의무였다.
182쪽
차가 고속화도로를 120킬로미터로 달리는 내내 부부는 정적을 지켰다. 대화가 없어도, 음악이 없어도, 라디오 소리가 없어도, 사랑이 없어도, 세상 모든 소리와 빛이 사그라진 곳에서 어색하지 않은 관계였다.
책(영영, 여름)의 첫 문장 : 알고 보면 돼지만큼 깔끔하고 예민한 짐승도 없다는 내용의 그림책을 오래전에 읽었다.
책(영영, 여름)의 마지막 문장 : 침묵만이 남은 미래에서 나는 암흑과 뒤섞일 때까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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