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shtnwls님의 서재
  •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 이시카와 야스히로
  • 13,500원 (10%750)
  • 2016-11-28
  • : 2,151
1922년에 공산당이 만들어지고 2016년 선거에서는 10%의 득표율을 기록한 일본이라는 국가의 마르크스 연구자가 쓴 최신의 부드러운 마르크스 입문서. 

스탈린이 만들어낸 왜곡된 공산주의의 이미지만 남아 그 사상을 언급이라도 할라치면 종북 빨갱이 친노 세트로 묶여 전쟁이 터지면 김정은의 적화통일을 후방 지원할 놈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으로 퉁쳐지는 것을 그게 아니다며 하나하나 부드럽게 설명해주는 책.

모든 분야에서 도통 입문서 이상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나. 문에 들어서놓고서는 매 번 현관에 앉아 들어가려고 하지를 않는다. 아 책도 나를 마르크스라는 집에 들어가 보고 싶게끔 했으니 입문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해야 할 건 마르크스라는 집에 들어가 방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거실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생활해보는 것일 텐데. 이번 집은 꼭 방 하나라도 살펴봐야겠다. 당장 자본론 1권을 구입해 책장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놔야겠다. 

생각, 밑줄

7쪽
마르크스는 <자본론>으로 대표되듯, 자본주의 사회를 정밀하게 분석한 학자이자 혁명가였습니다. 

9쪽
일본에도 이런 흐름이 미쳐 1922년 공산당이 만들어졌죠.  (2016년 선거 득표율 10.74%, 득표수 600만 이상)

창립 직후 일본공산당은 ‘침략 전쟁에서 손을 뗴라‘, ‘식민지를 해방시켜라‘, ‘한반도를 조선 민중의 손에‘, ‘천황제 타도‘, ‘민중에게 주권을‘ 등의 주장을 내걸었기 때문에 천황을 정점으로 한 지배층은 당연히 이를 적대시했습니다. 

10쪽
연합국 측에는 전후 일본의 개혁 방향을 정한 ‘포츠담 선언‘이라는 합의문이 있었습니다. 이 내용은 일본을 평화롭고 민주적인 나라로 다시 만들고, 전쟁 범죄자를 엄중히 추궁하는 것입니다. 1947년 시행된 일본국 헌법은 기본적으로 이 노선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1948년, 이를 일방적으로 내팽개치고 일본을 미국의 군사 기지로 재건하는 길을 걷습니다. ‘전쟁 포기‘를 규정한 헌법 제9조의 변경을 처음 요구한 게 다름 아닌 미군이었던 겁니다.

14쪽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의 전쟁을 통해 동유럽 국가에 소련군을 주둔시킨 스탈린은 이들을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각국의 저항이나 국제 여론의 비판 때문에 생각처럼 수월하게 진해오디진 않았죠. 그 와중에 미국이 유럽 부흥에 본격적으로 나서기까지 했고요. 이러한 상황에 초조함을 느낀 스탈린은 아시아에 ‘제2전선‘을 열기로 계획합니다. 미국의 힘을 아시아로 돌려 시간을 벌고, 그 사이에 동유럽의 ‘위성국‘화를 끝내려 한 겁니다. 한국전쟁은 1950년부터 이러한 계획하에 스탈린 주도로 시작됐습니다. 
 1949년 한국에서 미군 주력 부대가 철수하는 걸 보고, 우선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남진‘허가를 요구합니다. 스탈린은 당초 미국을 도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점차 이 방식을 전환해 1950년 3월부터 4월 사이 김일성 등과 가진 세 차례 회의를 통해 ‘남진‘ 작전을 함께 수립합니다.
 미국을 한반도에 묶어 두는 한편, 자신들의 운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스탈린은 북한에 대한 군사 지원을 1949년 막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중국에 맡깁니다. 이를 마오쩌둥에게 지시한 건 정확히 개전 직전인 5월의 일이었습니다.
 결국 미국은 UN군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고, 그 사이 스탈린은 부족하게나마 동유럽 ‘위성국‘화에 성공합니다.
 이렇게 한반도의 민중을 분단에서 상호 간의 살육에까지 이르게 한 한국전쟁은 스탈린의 영토, 세력권 확장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겁니다. 

15쪽
스탈린이 주도한 한국전쟁은 일본의 정치와 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첫째, 이 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일본의 재군비를 진행합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 경찰 예비대가 창설되었고(군대의 부활), 이것이 1952년 보안대가 되었다가 1954년 자위대로 격상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16쪽
일본공산당의 통일성 회복은 1957년 정식으로 이뤄졌는데, 이때 진행된 제7회 당 대회에서 당은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앞으로 어떤 해외의 ‘권위‘에도 종속하지 않고, 일본의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진다는 ‘자주 독립‘의 노선을 확인한 겁니다. 

17쪽
1970년 제11회 당 대회에서는 소련형 ‘사회주의‘를 일본 장래의 모델로 삼지 않고, 반대 정당의 존재와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 등 의회제 민주주의의 룰을 준수하는 내용을 명시했습니다. 

19쪽
이에(소련의 몰락) 대해 일본공산당은 ①붕괴한 건 소련형의 억압과 패권주의 사회이며, 이는 세계의 진보라는 측면에서 환영해야 할 일이다. ②소련의 붕괴로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므로 ‘자본주의 만세‘ 운운할 상황이 아니다. ③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을 전망할 때, 마르크스의 사상은 여전히 그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취지의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37쪽
1835년, 마르크스가 17세 때 썼다는 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제목은 <직업 선택을 압둔 한 젊은이의 고찰>입니다.
지위의 선택에 즈음하여 우리가 주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인류의 행복과 우리 자신의 완성이다.

44쪽
사람이 물에 빠지는 것은 중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며, 그 믿음을 머릿속에서 몰아내 버리면 물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관점을 마르크스는 관념론이라 불렀습니다. 어떤 관념(이 경우 중력이 존재한다는)이 현실(사람이 물에 빠진다는)을 만들어 낸다는 관점인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견해는 정반대였습니다. 사람이 알아차리든 그렇지 못하든 현실 세계에는 중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중력을 거슬러 헤엄치는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중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누구나 물에 빠진다. 애초에 ‘중력의 관념‘도 현실에 중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성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렇듯 관념이 현실을 구성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야말로 관념을 만들어 내는 근본이라 생각하고, 이런 관점을 유물론이라 불렀습니다. 

45쪽
관념론적 사고방식에서는 ‘모두가 안심하며 살 수 있도록 사회를 바꾸자‘, ‘유럽처럼 학비를 내리자‘처럼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행동을 제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믿음‘의 탓으로 돌려 버리기 때문입니다.

46쪽
마르크스는 당시 막 세상에 나온 생명과 우주의 진화론을 배우고, 세계가 변화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세계 만물이 변화의 과정에 있다고 보는 관점을 마르크스는 변증법이라 불렀습니다. 

마르크스가 대단한 것은 이 현대의 상식을 유럽의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는 신이 지금의 형상으로 창조한 것‘이라 생각하던 시대에 거침없이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47쪽
많은 사람들의 의지가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향할 때 역사가 크게 바뀌는 것이니 역사의 ‘추진력‘에 대한 탐구는, 즉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동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탐구라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 탐구를 통해 사회란 문화, 정치, 법률 등 여러 요소로 구성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강한 요소가 경제이며, 경제의 변화가 역사를 만드는 ‘동기‘의 근본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53쪽
자본주의의 ‘운동‘에 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한계는 자본 그 자체다. 즉 자본의 자기 증식이 생산의 출발점과 종결점, 동기와 목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국 생산은 자본을 위한 생산에 지나지 않으며, 생산 수단은 생산자들의 사회를 위한 생활 과정을 확대, 형성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 

58쪽
①자본은 사회적으로 강제하지 않으면 노동자의 건강과 수명에 대해 어떤 고려도 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이렇듯 어떤 제약도 받지 않으려는 자본주의 ‘본연‘의 방만한 모습을 제어하는 과정이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이라고 파악했습니다. 

59쪽
눈앞에 놓은 노동자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자본주의적 틀 안에서의 투쟁이 공산주의의 실현을 앞당길 사회변혁 과정과 연결된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보는 혁명론, 자본주의 개혁론의 올바른 방향입니다.

60쪽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가 ‘강한 힘에 의한 부르주아지의 전복‘을 주장한 바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선거를 통해 정치를 뒤집는다는 정권 교체의 민주적 규칙이 확립되지 않았던 당대의 환경 때문이었어요.

61쪽
오늘날의 사회는 많은 사람들을 온갖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를 무조건 참고 견뎌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다 함께 힘을 모아 변화를 일으키는 삶의 방식을 택할 수도 있죠.

62쪽
공동의 생산 수단으로 노동하며 자신들의 개인적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자각적으로 지출하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연합체

63쪽
‘생산 수단‘이라는 것은 공장, 건물, 원자재 등 경제 활동을 할 때 인간의 노동력 외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말합니다. 

경제 활동의 목적을 ‘자본가의 돈벌이‘에서 ‘모두의 생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생산 수단을 모두(사회)의 것으로 만들어야겠죠. 이러한 변혁을 마르크스는 ‘생산 수단의 사회화‘라고 불렀습니다. 

69쪽
우리는 단순히 마르크스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이 되려고 마르크스를 읽는 게 아닙니다. 그의 이론을 오늘의 현실에 활용함으로써 ‘발전‘시키기 위해 읽는 거죠.  

90쪽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혁명은 공상에 불과하며,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는 과학의 연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거죠.

92쪽
마르크스가 도달한 견해는 ‘자본주의도 사회 발전의 한 단계이며, 다음 단계의 사회에 자리를 내어 줄 것이다. 그러한 이행을 담당하는 것은 자본주의 내부에서 성장한 노동 계급‘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자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킵니다. 

104쪽
비판한다는 건 너는 이래서 안 된다는 식의 단순한 부정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즉 상대보다 풍부한 자신의 견해를 대치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한계점을 넘는 거죠. 

105쪽
당시만 해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이것이야말로 공산주의다, 사회주의다 하며 각자 목청을 높이고 있었거든요. 그런 그룹 중의 하나인 ‘의인동맹‘이 1847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당신들의 사상에 공감하니 부디 우리의 동료가 되어 달라며 가입을 요청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가입하는 대신 조직의 양상을 바꿔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그들이 제안을 받아들임에 따라 합류하게 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단체가 ‘공산주의자동맹‘입니다. 또, 이 단체로부터 운동의 기본 방침을 써 달라는 위임을 받아 마르크스가 쓴 것이 <공산당 선언>이고요. 당시 마르크스는 29세였습니다. 

116쪽
문제의 본질은 현실에 대한 해석을 바꾸는 것, 실업을 양산하는 ‘사회의 질환‘을 치유하는 것이라 보고 그렇게 현실에 맞서 개혁을 이루자는 것이 유물론의 입장입니다.
 바꿔 말하면, 유물론은 정신과 현실과의 관계에서 정신이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은 정신과 독립적이며, 정신에는 현실이 다양한 형태로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사고 방식입니다. 

117쪽
세계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물들의 복합체가 아닌 과정들의 복합체로 파악되어야 하며, 그런 맥락에서 겉보기에는 고정적인 사물들이라도...  생성과 소멸이 이어지는 변화 가운데에 있고, 그 변화 속에서 우연처럼 보이거나 혹은 여러가지 일시적 후퇴가 있을지라도, 끝내 하나의 전진적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위대한 근본 사상...

123쪽
자본주의적 생산은 생산에 관여햐는 이들의 행복이나 소비하는 이들의 생활이 아니라 자본의 자기 증식(사적 이익의 확대)을 그 동기이자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해, 이윤 제일주의입니다. 

127쪽
이윤 제일주의를 극복하려면 경제생활의 원동력을 일부 자본가의 사적 이윤 추구에서 사회 전체의 행복 추구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요. 생산 수단(공장, 원재료, 건물 등)을 자본가들의 사적인 재산에서 사회적 재산으로 바꾸는 일을 통해 가능하겠죠. ‘자신(자본가)의 이익을 위한 생산‘을 ‘모두의 이익을 위한 생산‘으로 전환한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대답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전환을 ‘생산 수단의 사회화‘라고 불렀습니다. 

130쪽
인간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인생을 즐기기 위해 태어났다, 따라서 노동만으로 시간을 보내는 건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134쪽
따라서 과도기가 진점됨에 따라 ‘자유로운 협동 노동‘의 주인공들에 의한 자발적이고도 공동체적인 사회의 관리, 운영은 발전하지만, 국가는 잠들어간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내놓은 국가와 관련한 장기적인 전망입니다. 공산주의 사회는 국가가 필요 없어진 단계의 사회라는 겁니다. 

141쪽
1936년에는 프랑스의 노동 운동이 재계와의 투쟁을 통해 세계 최초로 연 2주간의 유급 휴가를 쟁취합니다.

자본주의 발전이 여기까지 와 잇는 단계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가하며 ‘규제 완화‘(룰의 파괴)로 나아가고 있는 일본의 정치는, 그야말로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148쪽
그리고 이것(공황)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과잉 생산으로 인한 경제적 환란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즉 어느 순간 자본이 사회의 소비력을 한참 뛰어넘는 양을 생산해 대량의 재고가 발생하는 거죠. 이에 따라 자본이 생산을 축소, 억제하여 노동자를 해고하고 중소 자본에의 발주를 줄이는 것입니다. 

150쪽
이 문제에 대해 마르크스는 ①생산 자본과 소비자 사이에 상업 자본이 끼어들어 생산 자본에 ‘가공의 수요‘를 발생시키고, 상품 판매까지의 유통 과정을 단축시켜 상품이 아직 최종 소비자에게 넘겨지지 않았음에도 다음 생산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②신용이 생산 자본이나 상업 자본에 대해 규모의 확대에 필요한 자금을 즉각 제공하는 힘을 갖게 된다. ③최종 소비자가 세계 시장으로 확대됨에 따라 전체 소비 동향 파악이 더욱 힘들어진다는 각도로 분석을 진행합니다. 

183쪽
‘한 상품의 가치가 갖는 크기는, 그 상품에 실현된 노동의 양에 정비례하고, 또한 그 노동의 생산력에 반비례해 변동한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