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sonby54님의 서재

이순신은 임진왜란 7년 전쟁 동안 46회의 전투에서 모두 승전했다. 해전은 함선들우리의 명량이나 한산도 대첩처럼 손이 짓무르는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노를 놓지의 싸움인 동시에 그 배를 움직이는 노잡이들의 사투이기도 하다. 살라미스에도않았던 수많은 노잡이들이 있었다. 전투에서 패하면 자유를 잃게 될 것이라는 공포는 2천 년 전이나 500년 전이나 다르지 않았다.
살라미스 전투에서 살아남은 그리스 연합군의 수군들 가운데 노잡이들은 미천한신분을 벗어날 수 있었다. 공동의 선을 위한 일이 귀족들만의 특권이 아니라 평민과 노예에게도 가능하다는 의식이 퍼져나갔다. 민회의 역할은 더욱 커졌고, 자유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그리스인들의 가슴속에 자리하게 된다.
이어 등장한 페리클레스의 통치는 민주정의 심화를 이끈다.
이순신은 전쟁의 모든 과정을 기록했고, 참전한 병사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남겼다. 그들을 포상하기 위한 의미이기도 했겠지만, 동시에 그들의 존재를 역사 속에남기기 위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공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 점에서 그의죽음은 더 크게 다가온다. 그리스의 영웅들이 말하는 전사의 영광스러운 죽음은전장에서의 죽음이지만, 그것을 온전히 지켜낸 경우는 많지 않다.
델포이의 무녀는 세상 끝까지라도 도망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테미스토클레스는살라미스를 선택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이어가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던선택, 그것이 결국 전승으로 이어졌다. 마라톤이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테르모필라이는 버틸 수 있다는 것을 남겼고, 살라미스는 어디에서 싸워야 하는지를 결정했다. 이순신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싸워야 할 곳을 알고 있었고,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두려움 속에서 결정을 내린 지도자의 선택은 시대를넘어 같은 질문을 남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