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현자의마을/ 2015/ 김태완
조선시대 선비들이 보던 과거시험 중 마지막으로 통과해야 했던 시험인 대과에서 임금이 책제를 내리고 선비들이 답한 것을 엮은 책인 책문. 당시 임금이 내는 문제들은 정치, 경제, 문화, 외교, 교육 등 생생한 현안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아마 임금도 사람인지라 모든 문제들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을 터 젊은 선비들의 기개와 지혜를 빌려 나라를 잘 이끌어가고 싶었을 테다. 올바른 정치 구현하기, 공정한 인재 등용 원칙, 술의 폐해 근절하기, 외교관의 자질, 올바른 교육의 길 등의 문제에 대한 선비들의 답을 보면서 난 세 가지의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음을 근본으로 삼고 행하면 바르게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당시의 시대상과 현재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 마지막으로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술과 근심이라는 문제를 임금이 고민하고 책제로 내놓기까지 했다는 거다.
그 중 가장 먼저 이야기 하고 싶은 건 ‘마음’이다. 책문 속에서 ‘마음’은 정치의 근본이면서, 임금의 마음이기도 하다. 1447년, 올바른 정치를 구현하는 방안을 묻는 세종에게 성삼문은 이렇게 답한다. “신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마음은 정치의 근본이고, 법은 정치의 도구이다.’ 모든 변화는 마음에서 일어나고, 모든 정치는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정치의 근본은 마음이란다. 물론 제대로 잘 갖추어진 법과 제도도 정치를 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그보단 정치의 근본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 선비는 답했던 거다. 그렇다면 마음을 어떻게 정치의 근본으로 삼을 수 있을까. 이에 성삼문이 답하길.
“아직 밖으로 표현되기 전에 마음을 간직하고 길러야 하며 바야흐로 마음이 싹틀 때 잘 성찰해야 합니다.… 이 마음은 잡으면 간직되고 놓치면 없어지기 때문에 간직하고 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임금은 만백성을 두루 살피고 정치를 중심에서 행하고 있는 주체이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이다. 임금의 것이면서 인간의 것이기도 한 이 마음을 잘 간직하고 성찰해야만 국가와 천하의 기틀을 잡을 수 있는 정치의 근본이 될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던 거다.
두 번째로 이야기 하고 싶은 건 현재와 놀랄 만한 싱크로율을 보여주고 있는 ‘당시의 시대상들’이다. 1447년 세종은 문과중시에서 공정한 인재를 등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은가를 책제로 낸다. 이에 강희맹은 당시의 세태를 꼬집으며 이렇게 답했다. “…오직 임금의 뜻이 있는 곳에 따라 선비의 향배가 갈립니다. 그래서 자질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 견해만 현명하다고 믿고, 세상이 돌아가는 추세에는 등을 돌립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만 등용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버린다면, 사람들은 결국 임금이 좋아하는 것에 감정을 맞추고, 임금이 숭상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서 임금의 욕구에만 맞추게 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권력자의 뜻에 따라 입맛에 따라 인재들의 향배가 갈리니 오백 년 세월이 참으로 무색하다.
그럼에도 강희맹은 좋은 인재를 가려내는 원칙을 임금에게 확실히 밝히고 있는데 그 중 결코 등용하면 안 될 자는 바로 이런 자들이다. “…만일 재능을 살펴보아도 취할 것이 없고 덕을 따져보아도 본받을 점이 없는 사람, 백성들에게 해만 끼치고 다스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 권력을 믿고 멋대로 포악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 오늘날 좋은 인재를 등용하는데 적용할 수 있는 원칙으로 전혀 손색이 없을 만한 대책이지 않을까 싶다.
학교라는 공간, 교육의 목적에 대한 책제와 대책은 나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는데 그 중 1558년 명종이 교육이 가야할 올바른 길에 대해 묻고 조종도가 답한 대목이 바로 그러했다. 조종도는 “학교행정은 교육법과 교육제도가 확립되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니라, 학문의 진리가 마음을 즐겁게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 하면서 당시의 세태를 임금에게 고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않습니다. 재주와 기량이 적당한지 그렇지 않은지, 인물이 현명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묻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경쟁시켜서 문맥이 대충 정해진 법식에 맞으면 등용하고는 의심하지 않으니 이것이 과연 예의를 갖추고 서로 겸손하고 양보하는 도리를 가르친 것이란 말입니까? 학교가 쇠퇴하고 진작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수능에서 우리가 박 터지는 경쟁으로 오직 대학 합격만 바라보듯이 그 옛날 과거시험에서도 틀에 지워진 잣대 속에서 경쟁해 통과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거다. 그렇게 진짜 목적을 잃어버린 선비들은 당연히 백성을 위할 생각은 안하고 벼슬과 녹봉만 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조종도는 한탄한다.
이런 기시감, 이런 데자뷰라니. 학문이 마음을 즐겁게 하고 평소 덕행과 몸가짐이 바른 사람이 추천 혹은 제비로 뽑혀 공정하게 등용될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데자뷰를 너머 정말 현실 속에서 이뤄질 수 있을까. 오백 년이 더 흐르면 가능할까.
“지금은 인사를 선발하는 책임을 맡은 이조에서 청탁하는 사람만 봐주는 바람에 뇌물을 바쳐서 출세할 수 있는 지름길을 넓혀놓았다. 국가 재정의 통계와 지출을 주관하는 호조에서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일만 급선무로 여겨 가혹하게 세금을 독촉하고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 때문에 백성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사치하고 오만한 풍조가 날로 늘어나서 예법은 이미 공허한 문구가 되어버렸다. 병역세를 닥닥 긁어서 징수하는 폐해가 날로 심해지지만 군사의 명부에는 텅 빈 이름만 남아 있다. 권세 있는 사람들에게 억눌려 감옥에 간 사람들은 모두 억울하고 원통해도 하소연할 길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민간에서는 상업의 이익에만 몰두하여서 교묘한 물건을 만들어 이익을 내는 데만 힘쓰고 있다.“
이것은 1565년의 모습이다. 당시 정부의 각 부처를 뜻하는 이조, 호조를 오늘날의 이름으로 바꾸어 놓기만 하면 결코 오백 년 전의 모습이라곤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닮아있다. 돈을 내야만 좋은 자리로 갈 수 있고, 더 갖지 못한 이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어들이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 정당한 시위를 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하고, 미디어와 자본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만들어 그것을 가져야만 잘 사는 것처럼 교묘히 속여 이익을 챙기고.. 헌데 그나마 지금보다 그때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건 이 책제를 낸 사람이 바로 최고 권력자인 명종이었단 거다. 임금인 그는 그래도 현 대통령보다 사람들의 사정을 살필 줄 알았고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는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 위로 아닌 위로랄까. 노동하는 이들의 삶이 어떤지 제대로 살피기만 해도, 삼포세대를 넘어 오포세대라 지칭되는 청년들의 삶만 들여다봐도, 억울하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삶을 하루만 지켜본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의 정치를 펼칠 수 있을까. 절대군주제 때보다 더 교만하고 포악한 이들이 판치는 대한민국민주공화국은 차라리 그 허울을 벗어버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들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가면에 속지 않도록 말이다.
과거시험이라는 게 정치, 문화, 교육 문제 등과 같은 외면적이고 복잡한 것들만 다룰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옛날 임금들은 ‘술의 폐해’라든지,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과 같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생활살이, 마음살이에 대한 것들도 시험으로 내곤 했다. 1516년 중종이 술의 폐해에 대해 논하라며 책제를 낸 것이 그러한데 이에 김구라는 선비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세상에는 생기기 쉬운 폐단과 구제하기 어려운 폐단이 있습니다. 생기기 쉬운 폐단은 사물의 폐단이고, 구제하기 어려운 폐단은 정신의 폐단입니다. 구제하기 어려운 것이 먼저 나타나고, 생기기 쉬운 것은 뒤에 나타납니다. 정신의 폐단은 원인이고, 사물의 폐단은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나무가 병이 들면 좀이 슬고 젓갈에 악취가 나면 구더기가 끓는 것처럼 술의 폐해가 어찌 정신의 폐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술을 마시면 취하고 그로 인해 정신이 흐려지고 성품을 해친다. 이때 술은 사물이고 그 술을 마신 사람의 정신, 마음상태가 있다. 흔히들 술을 마시고 난동을 피우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술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허나 따지고 보면 그 술을 너무 과하게 마신 사람의 문제, 더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정신(마음)의 문제가 더 큰 건 아닐까.
그래서 김구는 “…술만 탓하고 마음을 탓하지 않거나 사물의 폐단만 근심하고 정신의 폐단을 근심하지 않는다면, 결국 성품을 잃어버리고 몸을 망치며 병을 불러들여 재앙을 초래하고 말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나라에서 아무리 술과 담배가 문제라며 값을 올리고 제한한다 한들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정신(마음)의 폐단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사물의 폐단은 결코 끊어질 수 없지 않을까. 물론 그것은 개개인이 정신의 폐단을 근심하고 적절히 조절하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일테다.
전란 후 혼란한 나라를 재정비하고 끊임없는 외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늘 바람 잘 날 없던 시기에 임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광해군이여서인지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다소 과거시험 문제로 의외이기도 하고 감성적이기도 한 내용을 책제로 내기도 했다. ‘한 해가 막 끝나는 날의 저녁’을 가리키는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에 대해 이명한이라는 선비는 이렇게 답을 올린다. “은하가 기울려고 하면 북두칠성의 자루를 보고, 촛불이 가물거리면 동창이 밝아오는가 살펴보면서 아직 닭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기뻐하고, 물시계가 날 밝는 것을 알릴까 두려워하는 것은, 이 밤이 새지 않기를 바라고 묵은해를 붙잡아두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 날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사실 그 해가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고, 그 해가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늙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야 천진하게 나이 드는 것을 반기고 기뻐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우리들은 나이 듦에 대해 서글프게 느낀다. 나는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나서는 해는 또 넘어가는데 제대로 살아온 것이 맞는지, 바라는 것을 잘 이루어냈는지에 대한 일종의 후회, 안타까움, 서글픔 같은 것들이 뒤섞여 섣달 그믐밤을 보냈던 것 같다. 임금이면서 한 인간이기도 했던 광해군은 해가 넘어가는 밤에 어떤 것들을 근심하고 어떤 것들을 소망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사실 어떻게 보면 임금의 책제에 대한 선비들의 답문은 원론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마음을 근본으로 삼아 정치를 해야 한달지, 인재를 등용할 때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달지, 학문의 진리는 마음을 즐겁게 해야 한달지 말이다. 허나 이러한 해결 방법들은 오늘날 우리가 정치, 경제, 교육 등의 문제들을 풀어나갈 때 놓치고 있는 근본적인 지점이기도 하다. 오백 년이 지났지만 여전한, 아니 더욱 어두워져 가는 이 시대를 보며 내가 발 딛은 자리부터 그 시절 치열하게 묻고 답했던 사람들처럼 바꾸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