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내리죠. 원두 20그램을 2분 동안 200밀리리터 딱 맞춰서 아주 정성스럽게,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향과 맛 다 느끼면서 천천히 한잔 마시다 보면 내가 이순간을 기다렸나 싶기도 하고.- P241
한 달에 50만 원이라도 저금할 수있다면 1년에 600만 원. 그렇게 10년 동안 돈을 모아 마흔 살이 되어도 원룸 하나 구할 수 없다는 계산이 서자무기력해졌다. 번 돈을 쪼개어서 이곳저곳으로 보내던날들에는 이런 계산 따위 하지 않았고, 삶의 무기력은조금 다른 영역에서 빛을 발했다.- P283
근데 힘들지 않아? 그런조는 수세미와 컵을 든 채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고그의 다리를 내려다봤다.
넌?
조가 물었다.
힘들지 않아? 그런 다리로?
동료가 잠시 손을 멈췄다. 미안하다고 했다. 걱정돼서 한 말이라고 덧붙였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자기는 한쪽 다리를 절지 않으면서 일하는 게 어떤 건지 모른다고,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고 조가 대꾸했다.
맑은 물에 세제 거품을 씻어 내며 조는 다시 물었다.
넌 어때 힘들지 않아?
힘들어.
힘들지. 오늘 같은 날은 오줌 누려고 서 있기도・나도 그래.
진짜 죽겠다. 이런 날은 하다못해 택시비라도 받아가야 되는 거 아니냐.
"근데 있잖아.
우리 이렇게 몸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니까... 너 힘든 거 나 힘든 거 저기 은이 힘든 것도 다 다를거잖아- P249
그럼 우리는 자기 힘든 것만 알지 서로가 얼마나 어떻게 힘든지는 영영 알 수 없는 건가?
나쁜 건가.
뭐가?
모르겠다. 말하다 보니까 존나 외로워지네.
그게・・・・・・ 자연스럽지 않나. 다 다른게.
그런가.
다 같으면 이렇게 많이 존재할 이유가 없잖아. 단 한명이면 되지.- P250
공감. 그게 과연 인간의 영역인가. 돌고래나 코끼리는 그런 걸 할 수 있는지도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노력해야 한다.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떨까, 상상해 보는 노력. 그러니 공감보다 필요한건 상상력인지도 모른다.- P279
왜냐면 너무 밉다는 것과 너무 좋다는것은 반대 의미가 아니니까. 국어사전에는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의 사전에 두 단어는 유의어에가까우니까 너무 좋으니까 밉고 그래서 무서우니까. 무서운 마음에 할 수 있는 말은 ‘괜찮아‘뿐이니까.- P258
나는 그럴듯한 위로를 건네고 도망쳤다. 이성적, 객관적으로는 나를 나쁘다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관적, 감정적으로 나는 나빴다. ‘너와 있으면 좋은사람이 되는 것 같아‘라는 말로 시작되었던 관계가 ‘너와 있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싫어!‘라는 말로 끝났다. 필사적으로 도망치고도 내 아픔을 그의 아픔보다부풀리기 위해 글을 썼다. 도망친 내게도 네가 모를 고통이 있다는 식으로 썼다. 글을 그런 것에 써먹었다. 그러니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은 고민거리나 좌절할 일이 아니라 어쩌면 아주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C에게 말하고 싶었다. 공감이란 상대의 말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꾸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행위 자체라고.- P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