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인외물', 즉 인간 외의 존재가 나오는 작품을 좋아한다.
이런 작품의 매력은 역시,
'보통 사람한텐 평범한 게, 인간이 아닌 존재가 하면 특별해지는 것'
에 있다고 본다.
"맥도날드 가서 뭘 사먹고 나온다."
평범하다.
"켄타우로스가 맥도날드 가고 싶은데 몸집이 너무 커서 입장 불가,
결국 매장 안에는 못 들어가고 드라이브 쓰루로 받아먹었다."
특별하다.
그냥 뭔가를 했는데,
신체 조건이나 능력이 인간이 아니라서 평범해지지 않는 그 느낌,
특별한 신체 조건이나 능력 덕분에 보통 사람이라면 못 하는 걸 하는 그 느낌.
그게 좋다.
이 작품 역시 인외물이다.
어릴 적에 '귀혼'이라는 게임을 하면서 배운 일본 요괴,
목이 아주 길게 늘어나는 여성 요괴인 '로쿠로쿠비'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표지부터 아주 센스가 넘치는데, 앞표지만 보면 그냥 평범한 여자 같지만,
뒷표지에는 아주 길~게 늘어난 목이 그려져 있다.
즉, 앞표지의 저 손은 길게 늘어난 목을 교묘하게 가려서
'언뜻 보면' 평범한 목처럼 보이게 페이크치는 것 ㅋ
덕분에 내 기대치는 더욱 올라가고,
나는 로쿠로쿠비답게 목이 길~게 늘어나는 여주인공이
어떤 삶을 사는지를 묘사하는 일상 개그물을 기대했다.
그런데 사실 알맹이는 좀 애매하다...
일단 목이 아주 길게 늘어나긴 하는데,
그렇게 살면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일상이 어떤지가 묘사가 생각보다 깊지 않다고나 할까...
(일례료, '후지야마는 사춘기'라는 만화는 키가 아주 큰 여학생이 주인공인데,
그래서 일본 일반 가정집에서 등교 준비를 할 때, 거울 높이가 좀 낮아서
몸을 옆으로 숙이고 양치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도 그런 식의 묘사가 많기를 기대했었다...)
목이 길게 늘어나는 게 임의적으로 컨트롤 가능하거나,
자다가 갑자기 늘어나거나 아니면 감정이 격해졌을 때 멋대로 늘어나는 식인데,
그 늘어났다는 게 그냥
'우와 늘어났다' 하는 느낌만 주고 별다른 큰 소동 없이 금방 끝나버려서 뭔가 아쉬운 느낌.
기본적인 이야기 골자는,
소꿉친구인 남학생을 짝사랑하면서 부끄러워하는 여주인공,
두 사람의 꽁냥꽁냥대는 청춘 러브? 정도다.
근데 읽다보면 '이거 로쿠로쿠비 아니어도 별 문제 없을지도?' 하는 느낌?
주인공이 로쿠로쿠비라는 특징을 살린 에피가 있긴 한데... 부족하다고나 할까...
게다가 학원물인데,
주인공,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소꿉친구 남주,
친구 한 명,
집에 같이 사는 남동생 정도로
주인공, 조연을 다 합쳐도 네 명 정도밖에 없어서
이 작품 속 세계가 깊고 넓다는 느낌이 안 든다.
그래서 작품 자체가 무척 가볍고 단조롭다.
옴니버스 개그물인데다가,
작품 내내 스토리라 할만한 건 그다지 없고,
그냥 '히로인 목이 겁~나게 늘어납니다요!'하는 게 전부고
이야기는 마땅한 기승전결도 없는 사건의 반복이다.
그래서, 재밌긴 한데 이야기 구성이 좀 산만하다는 느낌.
인물도 엄청 적고, 이야기라 할 것도 없다보니
작품의 흐름이 마치 혼자 뛰어다니는 강아지를 보는 듯하다.
지켜보면 귀엽고 재밌지만,
그 속에 특별한 논리도 뭣도 없는?
결론은
'작품이 가볍다'
'인외물이긴 한데 로쿠로쿠비인 게 그렇게 중요한 소재가 아니다'
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래서, 실망했느냐? 하고 묻느냐면
절~대 아니다. 매우 만족했다!
남주를 사랑하면서 부끄러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며,
부끄러운 나머지 발그레해진 얼굴도 너무 귀엽고,
둘이 소꿉친구라고 허울없이 지내면서 꽁냥꽁냥대는 게
아주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달달하다 ㅎㅎ
인외물의 맛은 애매할지언정,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맛은 아주 좋았으니 그거면 됐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