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기괴한 만화'...
일단 이 작품은 단편집이긴 한데,
시간대만 바뀔 뿐, 배경이나 스토리는 하나로 이어진다.
이전 권 '죠로쿠의 기묘한 병' 같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긴 단편집을 기대한 나로선 매우 아쉬울 따름...
주인공이 '지옥도'를 그리고 싶어 하는 미치광이로 나오고
그가 살아가는 주변의 끔찍하고 괴상한 풍경을 소개,
그의 가족을 한 명, 한 명 소개하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며
마무리도 광기로 가득차 있다.
주인공이 피로 그림을 그리는 미치광이 화가인데다,
그림 한 점, 한 점을 집으며 '이게 ~를 그린 그림이다' 하는 식으로 말하며
매 이야기 한 챕터, 한 챕터가 시작된다.
마치 '레이 브레드버리'의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을 연상시키는 구조지만,
아쉽게도 그 작품 처럼 완전히 별개의 단편이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가족 소개, 과거 회상만 나오면서 이야기는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그래서 단편집이 아니라 그냥 단권 완결 만화 느낌.
기승전결을 따르는 스토리가 없다보니
(그나마 주인공의 부모 등을 소개할 때는 나오는데,
이마저도 '~하고 살다 죽었다'하는 식이라...)
페이지는 살육과 광기로 넘쳐나고,
그래서 눈동자를 빠르게 굴려가며
도륙된 돼지 목, 피 웅덩이, 시체를 파먹는 구더기 등등을 보며
휘리릭 넘기게 된다.
즉, 이 만화를 보면서 얻는 게 '기괴한 분위기'말곤 거의 없다...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징그러운 이야기'라는 느낌.
(그런데 사실 같은 작가의 '죠로쿠의 기묘한 병' 단편집을 봤을 때도
그저 주인공이 불쌍하거나 기괴한 일을 당하는 내용만 보여주다 끝난 경우가 많아서...)
앞서 말했다시피 여러 호러 스토리가 실린 단편집을 기대했거늘,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진 것도 모자라서
읽고 나면 남는 게 '광기' 밖에 없다는 거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불만족스럽다.
그런데 마지막엔, 이상하게 만족스럽다.
이유는 형언하기 힘든데,
가족 소개 및 과거 회상으로 쭉 이어지던 스토리가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현재 배경으로 돌아오고,
주인공의 광기가 폭발하며 이야기가 막을 내린다.
그 광기가 꽤 임팩트가 있어서일까, 책을 덮었을 때 괜히 만족스러웠다.
결국 이 작품이 전반적으로 말하고 싶은 건 역시 '광기'인 듯하다.
광기의 화가인 주인공부터가 히로시마 원폭이 터지고
일본이 패전한 뒤에 태어났는데,
그 원폭 혹은 전쟁이 작품 속에 간간히 언급되는 걸 보면,
그리고 전쟁물에서 흔히 '광기'가 곧잘 묘사되는 걸 생각하면,
이 작품은 '인간 광기의 끝'을 묘사하고 싶었던 게 아닐런지?
결말 부분은 어떻게 보면 핵전쟁을 암시하는 구석도 있다.
그러니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있다면,
나는 그걸
'전쟁은 광기를 만들었고'
'핵은 전쟁을 끝냈지만, 동시에 더욱 큰 광기를 야기했다'
'하지만 핵은 사라지지 않았다'
'즉, 광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젠가 또 다시 광기가 터질 날이 올 것이다...!!!'
하고 이해했다.
어쩌면 책을 덮고 괜히 만족스러웠던 건
이 자체적 해석 덕일지도...
솔직히 만화 내용을 다시 떠올리라 하면
시체, 피를 맛있게 먹는 사람, 잘려나간 신체 같은 것만 기억나는지라
아무래도 다시 펼쳐볼 일은 거의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그 대신, 마지막 부분이 준 임팩트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