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두 번쨰이다. 작년에 '최초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라는 신선한 제목에 이끌려서 카를로 로벨리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대하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최후의 연금술사이자 최초의 과학자'라는 타이틀이 붙여진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이다. 그래서 '최초의 과학자'라는 타이틀도 보통은 케플러가 가져가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최초의 과학자라는 타이틀을 과감히 그보다도 훨씬 더 전인, 2000여 년 전의 인물인 아낙시만드로스로 설정하는 과감함을 보였고, 저자는 자신의 풍부한 지식을 이용해서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사상과 현대 과학의 기반을 병렬적으로 제시하고, 그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통찰을 보여 주었다.
이번 책에서도 그 면모를 기대하고 책을 펼쳐들었고,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저자는 현대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는 원자론, 다시 말해서 세상이 연속적인 물체가 아니라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을 맨 처음으로 생각해 낸 데모크리토스에 우선 주목한다. '원자들은 모양 외에는 그 어떤 성질도 갖지 않습니다. 무게도 색도 맛도 없습니다. "관례상 달고, 관례상 쓰고, 관례상 뜨겁고, 관례상 차갑고, 관례상 색이 있는 것이지, 실상은원자와 진공일 뿐이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현재 우리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가!
저자는 데모크리토스의 입을 통해 '간단한 관찰과 예리한 추론'를 가지고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위대한 지성인의 업적이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고 단편적인 조각으로 남아버렸다는 점에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조각이 다시 모여서 뉴턴이라는 최고의 천재에게, 그리고 더욱 커다란 선물로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데모크리토스가 생각한 '세상은 연속적이지 않다.' 라는 아이디어가 현재까지 유효하다는 사실이 책 전반을 통해서 계속 나온다.
플랑크가 에너지가 양자화돼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이 그렇고, 아인슈타인의 광자 이론이 그렇고, 아인슈타인이 브라운 운동을 통해서 원자론을 마침내 입증했다는(동시대 최고의 지성 중 하나인 에른스트 마흐는 원자를 믿지 않았다.) 사실이 그렇고, 마침내 현대 양자론에서 자연이 근본적으로 최소 길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마침내 시공마저도 양자화돼 있다는 아이디어를 이용해서 양자 중력 이론에 대한 설명도 이끌어 냈다.
정보의 양 자체가 무한하다고 생각하던 고전역학의 세계에서 정보의 양 자체가 제한돼 있다는 양자중력의 세계로 넘어가게 된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보여 주고 있다.
언뜻 보면 단순해 보이는 개념들이 물리학에 끼친 영향은 너무나 많고 방대하다.
이런 사실들을 서평에 전부 다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