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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엔도 슈사쿠의 그리스도교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엔도는 1923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1996년 동경에서 숨을 거둔 일본의 소설가이다.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고, 일본 게이오대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가톨릭 신앙에 관하여 여러 저서를 남겼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소설 <침묵>일 것이다. 가톨릭 박해기 일본에 선교를 온 유럽인 신부. 그는 배교하면 신자들의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요구를 받는다. 탄압받는 신자들에게 하느님은 침묵하신다. 신앙을 지킬 것인가, 배교하고 사람을 살릴 것인가의 딜레마. 어느 쪽을 택하든 어려운 문제이다.
책의 첫머리에도 나와 있듯이, 이 책에는 소설가인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교의 공식 입장과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유념하며 읽어야 한다. 또한 저자가 20세기 일본인을 독자로 상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일부 일화나 예시의 경우 우리에게 생소한 것들이 다소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세례를 결혼에 비유한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따라 세례를 받은 그. 자신의 세례를 저자는 정략결혼과 같았다고 표현한다. 스스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연애결혼이 아니라, 부모가 어린 나이에 정해 준 사람과 어느 날부터 함께 살게 되는 정략결혼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한때 자신의 의지로 종교냐 이념을 선택한 사람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다. 모태신앙으로 그 신앙을 이어가고 있는 어느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신앙을 선택한 적이 없이 어려서부터 당연하게 여겨온 길을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따르게 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마치 어떤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순간처럼, 신앙과는 무관하게 살다가 하느님을 찾게 되는 그 기쁨을 자신도 느껴보고 싶다는 투였다. 나는 거기에 특별한 답을 해주지는 못했다. 이에 저자는 말한다. 연애결혼이든 중매결혼이든 정략결혼이든 결혼 이후가 중요하듯이, 세례를 받은 후 신앙을 어떻게 이어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우리 사회에는 종교인, 신앙인에 대한 편견이 있다. 특히 개신교의 선교와 전도 행위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이에 저자는 말한다.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은 다르다고 말이다. 중세 유럽에서 십자군 전쟁, 마녀 사냥 등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과오를 저질렀음은 분명하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교 좌파로 노동 사제가 되어 공장에서 일하는 신부가 있는가 하면 물론 우파 신부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과오를 범하기도 한다. 신앙인이랍시고 우월감을 드러내거나 위선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이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난 과오를 반성하며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 작가인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창동 감독, 전도연 송강호 주연의 영화 <밀양>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소설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는 속이 타들어 가는데, 정작 범인은 하느님께 용서받았다며 평화롭게 지내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러나 이는 한 개인의 오만일 뿐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아니다. 사람에게 저지른 죄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성경에서도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 하다가 형제에게 원망을 들은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은 놓아두고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라고 이른다. 제멋대로 짐작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그저 오만이고 위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