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jooltac 2026/03/19 00:01
jooltac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단 한 사람
- 최진영
- 13,500원 (10%↓
750) - 2023-09-30
: 14,235
아직 최진영 작가님의 작품은 ‘구의 증명’과 ‘단 한 사람’ 밖에 읽지 않았지만 작가의 말과 같이 그녀는 언제나 ’언젠가 사라져버릴 당신과 나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쓰는듯 하다.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내가 일찍이 알지/깨닫지 못했던 사랑을 마주한다. ‘단 한 사람’에서 그녀는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라고 적는다. 이 구절에서야, 일화를 바라보는 월화의 ’알아. 나도 너처럼 그렇게 내 몸에 얼굴을 파묻고 이 지긋지긋한 인생을 구덩이에 다 묻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 엊그제도 그랬고 어쩌면 내일도 모레도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을게. 너를 보고 있을게. 네가 네 손으로 네 인생을 파묻지 않도록 내가 감시해 줄게.‘ 라는 구절에 다다라서야 나는 내 동생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글은 담담한 필체로 그려놓은 감정이 짙어서 눈물을 떨어뜨리며 읽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나가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서술한 것 처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나를 울렸던 단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
죽음은 그녀의 질문이자 답을 도출해내가는 과정이다. 죽음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극단적인 이벤트 이기도 하지만 삶의 필수적인 구성요소이기도, 그래서 가장 평범한 것이기도 하다. 그녀의 소설에서 등장인물은 모두 죽음을 겪어내며 성장한다. ‘구의 증명’에서는 죽음마저 나의 몸으로 온전히 안아내며 그를 사랑하고, 하나가 되는 지점에 다다른다. ‘단 한 사람’ 에서는 죽음을 지켜보기도 구해내기도 하는 나는 엄마와 할머니 와는 다른, 더이상 나아가지 않고 열심히 살리며 단순히 기적이라고 단념하거나 겨우 한명만 구해내는 저주라는 분노를 쏟아내고 냉소를 퍼붓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담담히 하나 하나의 개별적 죽음을 존중해 나가는이로, 더 나아가 죽고싶어하던 이는 나를 돕고 싶어서, 살리고 싶어서 선택한/선택받은 이를 키워내기에 이른다. 죽음은 모두의 삶을 폭풍우처럼 쓸고간다. 그 폭풍우 안에서야 우리는 질문을 하기도, 답을 찾기도, 또는 답은 없음을 깨닫기도 한다.
나는 그녀가 죽음이라는 소재를 이용하는 것도, 그러면서 죽음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드러내는 것도 모두 좋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터부시한다. 또는 죽음을 충분히 긍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단순히 삶의 끝 이라는 고루한 죽음의 정의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야한다. 죽음을 삶과의 대척점이 아니라 삶의 과정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그 순간에 이르러야 ’영원한 건 오늘뿐이야. 세상은 언제나 지금으로 가득해.‘라는 뜻을 이해하게 된다.
혹자의 리뷰를 읽다보면 이야기에 걸맞지 않은 허무한 엔딩이라는 평이 있는데, 나는 감히 반기를 들어본다. 이 글은 전체적으로 엄청난 반전이나 대단원의 마무리가 걸맞는 거대한 글이 아니다. 작가는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매일 글을 썼다고 한다. 이 글의 구성은 이전에 읽었던 ’구의 증명‘에 비해서도 다른 촘촘한 작가들의 이야기에 비해서도 매우 성글다. 이 글은 담담하고 듬성듬성 틈이 있는, 그 순간을 기록해야 하기에 쓰여진 찰나의 기록이기에 빽빽할 수도, 따라서 대단한 마무리를 할 수도 없다. 어쩌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일 수도 있는 금화의 실종조차 작가는 성글게 마무리 짓는다. 더이상 금화의 이야기는 중요한것이 아니다. 모든 죽음은 개별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죽음은 모든곳에서, 모두에게 일어난다. 질문과 답을 찾기 보다는 그대로 존중하고 보내주는 것이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이 글을 읽어내려가며 한 가문의 여자들에게 내려진 무언가를 기적, 겨우, 단 한사람, 기도로 대하는 변화를 보며 원동력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나 혼자 겪어내야 하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옆의 동반자가, 나와 함께 모든것을 겪어내는 사람이,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 나를 사랑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든것을 감당해내기에 충분치 않은 경우도, 나와 같은 일을 겪지는 않지만 내 존재의 분신인, 둘이지만 언제나 하나인 경우도, 나와 같은 것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의 경험과 나 자신마저 바꾼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