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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님의 서재

들뢰즈의 글들은 여러모로 대담하게 보인다. 많은 것들의 '발생'을 탐구하기 때문에, 생물학적 발생, 개념의 발생, 의미의 발생, 철학의 발생... 수많은 영역을 휘젓고 다니고, 그 대담성이 과감을 넘어 성급하거나 과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영역과 주장들을, 표현하려면 달리 어떻게 하겠는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내버려둬야 할까? 가능한 수준을 계속 확장하고 도전해서 시도해야 할까?


의심스러운 영역들은 

기의와 기표를 포함한 언어학 영역

미분을 다루는 수학

생물의 발생을 다루는 생물영역


철학을 다루는 글쓰기에 충실한 글들과 다른 결을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다루고자하는 대상, 즉 발생은 다양한 층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가장 높은 층위에 있는, 즉 현재에서 우리들이 접할 수 있는 결과물들로 시작해서, 그 직전 층위를 언급하고, 결국 맨처음 층위까지 도달한다. 그러고는 그 발생을 그 과정을 치밀하게 다룬다.

이렇게 나뉜 층위들은 여러 타당성과 효용을 갖게 되지만, 발생이라는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하고 그때 효과들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러니 들뢰즈 글들의 과감성을 탓하기 어렵게 되고, 그런 생성의 원리가 갖는 파급효과를 실감하면서 그의 글들이 긍정적으로 범상치 않아 보이고 슬슬 반하게 되는 거 같다.



<차이와 반복>에서 잠재적인 것, 바탕, ... 물질적인 것과 이념적인 것 사이에 관련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의미와 논리>에서 '의미'의 자리를 인상적으로 잘 기술하면서 그 관련성이 좀더 이해하기 쉽게 다가왔다.


의미와 자리 말고도, <의미와 논리>에서는 '의식'의 자리도 인상적으로 기술한다. 말그대로 의식의 발생을 정신분석학을 이용하여, 말하자면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빌어 기술하고, 설득력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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