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이 맞지 않는 비밀은 결국 깨질 수밖에 없다는 걸 뒤늦게깨달았다. 친구 관계라는 건 균형 위에서만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
균형이란 얼마나 부서지기 쉽고 얄팍한 것인지.- P54
굳이 균형을 맞출 필요가 없는, 이런 친구 사이도 있는걸까?
내별마을에 살아도 당당한 효민이, 대놓고 비꼬는 친구가 있어도재치 있게 넘기는 효민이, 밝고 재밌어서 인기가 많은 데다 우리반 반장이기도 한 효민이, 고효민은 어렸을 때와 신기할 정도로똑같았다.
내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동안 나쁜 일들이 고효민만은 피해 간것 같았다. 그게 얄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내별마을은정말 싫지만 고효민이 내별마을에서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다는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이상한 위로가 되었다.- P58
처음에는 고효민을 믿어 보려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휩쓸리기 시작했다. 의심과 악의는 손쉽게 전염된다. 그것은 내가너무나 잘 아는 공식.- P65
‘배려받아야 하는 내별마을에 사는 주제에.’고효민을 생각할 때마다 미처 몰랐던 어두운 마음이 울컥울컥솟아올랐다.
아빠가 늘 말했다.
"주목아,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법이란다. 네게 주어진 환경에감사하렴."- P75
생일 파티는 매년 하던 거지만 이번에는 엄마가 특히 공을 들였다.
올해는 내가 반장이 아니기 때문에 기를 살리는 의미로 더 멋지게주겠다고 잔뜩 벼르며 준비했다. 마술사 초대는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P80
엄마도 반 애들 중에서 고효민을 딱 집어 칭찬했다. 나는 그저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반박할 부분도 없었다. 이제까지 지켜본고효민은 괜찮은 애가 맞았다. 나는 고효민을 향해 뾰족하게 세웠던날이 둥그렇게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P81
이제 내 역할은 끝이다. 다음은 저 애가 감당할 몫이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폈다. 범인을 찾았으니 후련해야하는데 마치 커다란 덩어리가 걸린 듯 가슴 안쪽이 묵직했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고효민이 다른 생물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P85
고효민이 두르고 있던 빛나고 긍정적인 이미지들은 그날 이우무참하게 산산조각 났다. 아이들은 고효민이 마치 자신들의 지갑을훔친 것처럼 분노했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누가 고효민에게어떤 잔인한 짓을 해도 정당화되었다. 왜냐하면 고효민이 자기들을속였으니까, 다른 애도 아닌 그 고효민이 그랬으니까.- P85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조이듯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쓰라리기도 한 그 감정은 아마 질투일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구석에는 질투와는 아주 색이 다른 묘한감정도 있었다.
바로 안도였다. 고효민이 무너지지 않는 것에 대한 안도.- P89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효민이 스스로를 잃고 시들어 가는모습을,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P89
그 애가 당했던 일들의 무게에 비해 내가쓰려고 하는 말들은 너무나 얄팍했다. 그 모든 게 우리의 오해였고고효민은 잘못이 없었다, 이렇게 쓴다고 해서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수 있을까?- P100
이제 다음은 각자가 감당할 몫.
고효민에게 사과를 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모른 척하는 아이도있을 것이다. 혹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지낼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당장 고효민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P102
그냥 고효민이라는 인간 자체가 순수하게 궁금해졌다. 나도 모르게고효민이 신경 쓰이고, 그 애의 말에 아닌 척 귀를 기울이고, 가끔은같이 어울리고도 싶었다. 어쩌면 나는 고효민과 친구가 되고 싶었나보다.- P103
그러고 나서 만약 고효민이 사과를 받아 준다면, 당장이아니더라도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 가고 싶은 동등한 관계.- P103
가파른 계단을 올라, 나는 고효민에게로 향했다.- P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