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에 진심을 다할 수 있는 희도. 그런 희도를 보고 지수는 남들이 만들어왔던 자신의 이미지를 그냥 ‘나‘ 원래의 ‘나‘로 인정하려 마주한다. 내 공간에서 나를 어색해하고 의식하던 지수가 거울에 비춰진 나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순간 지수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 너무 궁금하다.
진짜 나를 마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게 일반적이지 않다면 더 그렇다. 일반적이라는 것을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시선, 기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수에게는 가혹하게도 돌 페스티벌과 육상대회 날짜가 겹쳤다. 지수의 주변 사람에게 무언가는 말해야했다. 그 누가 실망할 수도 있는 말.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보다, 남들이 생각한 나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보다 사실 더 힘든 것은 ˝내가 우유부단하고 겁쟁이˝라는 것을 들키는 게 더 힘들다.
나도 정말 그렇다. 답은 정해져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선택하기 힘들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다 잘하고 싶고 성격이 괜찮으며 일도 잘한다는 소리도 듣고 싶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정말 듣기가 싫다. 이럴 때 F와 T는 극명하게 차이가 나지만 내가 제일 믿을 만한 조언자는 늘 T라는 것ㅎㅎㅎ
아무튼 희도의 말에 단단하게 성장해가는 지수.
지수의 엄마가 돌페스티벌은 내년에도 있으니 취미와 진학을 잘 생각해보라고 했을 때 지수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응원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엄마의 말에 백번 공감했다. 돌페스티벌는 내년에도 있어. 올림픽을 포기할거야? 하는 느낌이니까. 하지만 지수의 편지에서 한방 먹었다.
육상대회는 내년에도 있어. 내가 처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해보기로 한 순간이라서야. 내 인생에서 주체적으로 딛는 첫발자국라 나겐 너무 중요해. 나를 바꿀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결정적인 때는 몇 번 오지 않아.
진짜 좋아하는 것이 있고 그걸 말할 용기가 있는 지수가 부러웠다. 어른인 나도 내가 정말 이걸 좋아해. 정형돈이 얼마전에 했던 말, 스스로가 가치있는 일을 위해 그만큼 노력한 적이 있던가. 지수보다 더 살았지만 난 아직 없다. 그래서 지수한테 배운다.
나를 알아가는 데에서도, 사랑에 대해서도 한발짝 한걸음 엄청난 용기를 낸 지수와 희도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 둘을 안아주고 싶다. 자랑스럽다고.
Q.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뭔가요?
Q.
그림책 <내가 곰으로 보이니?> 정지수
영화 <빌리 엘리어트> 안희도
그림책 <반짝이> 빛이 나는 것에 앉는다는 반짝이, 좋아하고 있는 것을 할 때 가장 빛나는 ˝사람˝
그림책<쫌 이상한 사람들>

커다란 키에 큼직한 이목구비, 4학년 때 이후로 늘 짧은 커트머리.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남자아이로 안다.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이 내가 귀엽고 예쁜 것에 무관심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그런 것들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고 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체육이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매력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절대로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안어울리니까.
오죽하면 나조차도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을까. 그저 이 방 안에 앉아 있을 뿐인데도, 당장 뛰쳐나가야 하나 어째야 하나 싶을정도로 무시무시하게 안 어울렸다.- P19
친구들이 만들어 준 이미지대로 행동하면 늘 인기가 많았다.
나를 떠받들었고 누구든지 내 곁에 있고 싶어 했다. 힘들이지 않아도 친구가 생겼다. 싫지 않았다. 압박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결과로 주어지는 것들이 달콤했다.
그런데, 왜 이제는 이렇게 불편한 걸까.
"아무튼 그때 발레는 영원히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좋아하더라고."
"......."
"고작 남의 시선 때문에 좋아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는 내가 더부끄럽게 느껴져서. 아, 이게 뭐라고 너한테 구구절절……."- P74
진짜 그랬다. 운동 만능에 쿨하고 멋지고 키 크고 잘생긴 아이돌 대우받는 정지수. 이미 고정된 기대치를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았다. 동경으로 빛나던 아이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변해 버릴 것을 생각하니 어쩐지 좀 두렵기도 했다.
그냥 만들어 준 이미지대로 행동하는 게 편했다.
쿨하고 멋지긴 개뿔. 난 이렇게나 남을 의식하는 겁쟁이인데.
"고작 남의 시선 때문에 좋아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는 내가 더부끄럽게 느껴져서." 라는 희도의 그 말이 파도처럼 마음에 부딪쳐 거품이 일었다.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게 나는 늘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걸 부끄러워하는 내 자신이, 처음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P75
톡이 끊긴 후에도 나는 한참이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앉아있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리다 거울 속 나와 정면으로 눈이마주쳤다. 나 자신조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을 한 내가 거기에 있었다.- P87
왜 나는 말하지 못하는 걸까? 친구들이 생각하는 정지수와 지금 여기에서 인형 소품을 만들고 있는 정지수의 온도 차. 내가생각하는 것만큼 정말 큰 차이일까. 친구들이 정해 놓은 정지수라는 틀, 그것과 안 어울리는 일을 하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일까.- P131
나는 왜 남들이 멋대로 만들어 놓은 그 이미지에 계속 집착하는 걸까. 초라하고 내성적인,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던 한 여자아이가 내 안에서 조금 고개를 들었다. 예전처럼 지워 버리지않고 나는 그 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P131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소질, 재능, 미래, 진학. 선생님과 부모님 입에서 나왔던 단어들이 무거운 무게로 가슴에 얹혔다. 오랫동안 동경했던 일,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그 무거운 단어들이 짓눌려 하잘것없이 내동댕이쳐지는 느낌이었다.- P138
"아까 생각 없다는 말 취소. 넌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 그런데그 생각이라는 게 늘 남에게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게 문제야.
네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 위한 생각이라기보다는."- P144
"그럼에도 못 하는 이유는 겁이 나서인 거야. 근데 있잖아. 남의 시선보다 더 무서운 건 결국 네 목소리를 죽이는 거라는 거 알아? 계속 죽여 가다 보면 정말 네 자신이 없어지게 되거든."- P144
도리안 언니가 내게 실망하는 게 두려웠다. 언니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랬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우유부단하고 마음 약한 겁쟁이라는 걸.
그러니까 정지수,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뭐야?"- P145
내가 처음으로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용기 낸순간이라서야.
내가 처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 스스로 해 보기로 한순간이라서야.- P154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그런 게 사실 내 취향이라서 예전부터 직접 만들어 왔어. 너희들에게 말 안 한 건 너무 나랑 안 어울려서……."
안 어울려서. 내가 생각해도 안 어울려서. 그래서 실망할까 봐.
너희들이 내 어떤 점을 보고 좋아하는지 잘 아니까.
"그런데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 좋은 기회가 있어서99나가기로 했는데 너희들에게 이제는 말하고 싶어서."
정말로 이제는 말하고 싶었다. 진짜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하고 싶은 것.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맞추지 않는 것을 하고 싶었다.- P160
있어. 그 애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뭔지 나는 알아. 좋아하는것을 하고 있을 때의 그 애가 얼마나 환하게 빛나는지도.- P176
"반짝거리는 열정도 그랬고, 그럼에도 자신 없어 하는 것도 그렇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도 그랬어.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나 봐."
99언니가 미소 지으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같이 여기에 나오자고 한 거야. 좋아하는것을 직접 경험하고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세계를 넓혀 주거든."
"그리고 그 세계가 넓어지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까."- P181
그리고 그건 절대로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시작이었다. 그 시작을 위해 도리안 언니의 도움이 있었고, 부모님의 존중이 있었고, 친구들의 이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