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여름날의 소상(24, 끝)
그녀가 민기의 존재를 발견했더라면 절대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짓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덧 신랑 신부의 발걸음은 행진하는 길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때 쯤 여인은 슬며시 자신이 서 있던 곳에서 벗어나더니 민기의 왼쪽에 섰다.
그러더니 자신의 오른 팔을 민기의 왼쪽 팔에 끼워 넣었다.
민기는 흠칫 놀라 여인에게서 자신의 왼 팔을 빼려 했으나 여인은 놓아주기는커녕 자신의 오른 팔꿈치에 더욱 힘을 주어 꽉 꼈다.
“가만 있으세요.”
민기는 여인이 팔을 끼는 것에 대해 말을 안 했지만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웨딩마치는 계속되고 있었으나 성격 급한 하객이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건드리는 소리와 섞여 선율이 아름답지 않았다.
신랑과 그녀는 로비 입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을 곳까지 왔고 그때서야 그녀는 민기를 보게 되었고 신랑도 여인을 보게 되었다.
“웃으세요, 환하게!”
여인은 말투는 속삭이듯 나지막했으나 민기의 귀에는 크고 또렷하게 들렸다.
여인은 환하게 웃었고 민기도 따라 웃었다.
그러나 신랑과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졌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팔짱을 풀었다.
신랑과 그녀는 굳은 얼굴로 돌아섰고 민기와 여인은 웃는 얼굴로 돌아섰다.
“불교에서는 전생에 1천겁의 선근을 심으면 한 국토에서 살아가는 인연을 만나고, 2천겁의 선근을 심으면 하룻 동안 길을 동행하는 인연을 만나고, 3천겁의 선근을 심으면 하룻밤 같은 곳에서 잠을 자는 인연을 만나다고 합니다.
1겁이란 천지가 개벽이 되어 새로 열린 날부터 시작하여 다음 천지가 개벽이 될 때까지의 시간이니 1겁의 인연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긴 시간대라고 할 수 있지요. 그쪽과 보길도에서 하루 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반나절 정도를 같이 있었으니 우리는 적어도 전생에 1천 5백겁 정도의 인연이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럴려면 조건이 하나 있어야 하는데요?”
“조건?
무슨 조건이요.”
“그쪽이 암고추잠자리나 암사마귀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 하하!”
“못됐다.”
S호텔을 빠져나올 때까지 민기와 여인은 팔짱을 풀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