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여름날의 소상(21)
1개월 전 그녀의 친구는 그녀가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녀를 잊는 것이 좋겠다며 마치 민기를 생각해주는 듯이 말했지만 그녀의 친구의 전해준 그녀의 결혼 소식은 오히려 아물어가고 있는 아픈 생채기를 덧나게 하였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잊어야만 했고 또 잊으려 애썼기에 잊어지고 있었던 그녀였다.
그러나 잊어지고 있다는 것은 민기의 자위였고 실상은 가슴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날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은 후부터 어느 정도 가라앉았던 민기의 마음이 다시 혼란해졌다.
그것은 그대로 그녀를 삶에서 지워버리느냐 아니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보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친구로부터 그녀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무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무시 저 밑에서 갈등의 싹이 돋았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화가 났고, 너무나 화가 나 결혼식에 가서 깽판을 쳐볼까도 생각했으나 자신이 그럴 위인은 안 되기에 바보 같았고, 그 바보 같은 자신을 자책했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를 아예 잊을 수 있다면 좋았으나 잊으려 하면 할수록 잊어지기는커녕 그리움의 잔영은 더욱 진해졌다.
하지만 잊어야만 했다.
그래서 민기는 그녀와의 추억을 반추한 후 그녀를 망각의 늪 속으로 밀어 넣고자 그녀와 자주 만났던 카페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카페에 들어서 그녀와 마주 앉았던 좌석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급속히 변하기 시작하였다.
커피를 마실 때면 다른 사람의 입술이 많이 닿지 않은 부분으로 마시겠다며 커피잔의 손잡이 맞은편 부분으로 마시기 위해 커피잔을 90도로 꺽을 때의 그녀의 가녀린 손목이, 별로 우습지 않은 말에도 환희 웃어줄 때 드러나는 가지런한 치아가, 기분이 좋을 때면 나지막이 발라드를 흥얼거릴 때의 음성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이어져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와 갔었던 곳이, 그곳에서 있었던 순간들이 연이어 떠올랐고, 그런 그녀에 대한 잔영들은 그녀를 망각의 늪 속으로 밀어 넣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그리워하게 만들었고 그 그리움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민기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한 번 보아야겠다는 결심을 갖게 하였다.
‘그래, 마지막으로 한 번 보는 거야. 마지막으로. 그리고 잊는 거야. 다시는 생각하지 않고 깨끗이 잊는 거야’
민기는 몇 번이고 다짐을 했다.
그 결심이 결실을 맺게 될지는 몰랐지만 그때 민기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그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