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여름날의 소상(14)
침묵에 잠겨 있던 여인의 입에서 뜻 모를 말이 튀어나왔다.
“뭐가요?”
여인이 토해낸 말이 뜻 모를 말이었지만 곱다는 것에는 어떤 대상이 있을 것이었다.
“저기 저 고추잠자리요.
몸통 색깔이 엄청 곱잖아요.”
여인은 손가락으로 세연정 난간이 꺾어 도는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몸통이 오렌지색인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고추잠자리가 햇볕에 날개를 반짝이며 앉아 있는 곳에서 50센티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 사마귀도 한 마리가 마치 죽은 듯이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둘 다 암컷이군요.”
“암컷이라니요?
저 고추잠자리가요?”
“고추잠자리도 암컷이고 그 앞에서 고추잠자리를 노리는 사마귀도 암컷이에요.”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
여인은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민기를 쳐다보았고 그 시선에는 자신의 호기심을 풀어 줄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추잠자리는 성숙하기 전에는 암컷이나 수컷이나 몸 전체와 날개가 모두 오렌지색을 띄어요.
그래서 어릴 때는 암수를 구별하기 힘들어요.
그러다 성숙해지면 수컷은 몸 전체가 붉은색이 되지만 암컷은 오렌지색이 조금 희미해지지요.
저기 저 고추잠자리처럼요.”
“어머 그래요. 전 몰랐어요.”
여인은 자신이 가리켰던 고추잠자리를 다시 쳐다보았다.
고추잠자리는 민기의 말처럼 희미한 오렌지색을 띄고 있었다.
“그런데 어릴 때 저는 고추잠자리는 모두 수컷인 줄 알았어요.”
고추잠자리에 주었던 여인의 시선 다시 민기에게로 옮겨졌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아무리 곤충이지만 수컷이 있으면 암컷이 있는 것이잖아요.
그래야 번식을 할 수가 있잖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저는 고추잠자리가 고추잠자리라고 불리게 된 것은 수컷만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왜냐면 고추가 남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속어잖아요. 그래서 고추잠자리는 모두 수컷만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어요.”
남자의 성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민기는 겸연쩍었는데 그것은 친하지 않은 여자에게 쉽게 건넬 단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인은 입가에 설핏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는 여인도 고추가 남자의 성기를 의미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참으로 순수하시군요.”
“순수하긴요.
멍청한 것이지요.”
“제가 보기에 그쪽은 전연 멍청하지 않으신 분 같은데 본인이 멍청하다고 하니 멍청한 것으로 하고요.
그러면 멍청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게요.
제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흡족하면 그쪽이 멍청하지 않은 것으로 인정할게요.
그럼 고추잠자리를 왜 고추잠자리라고 불러요?”
여인은 이전보다 조금 더 크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것에 대한 답은 별거 없어요.
고추잠자리의 몸통이 잘 익은 붉은 고추 같아서 그렇게 부른답니다.”
민기는 자신의 말이 정확한 답이라는 확신을 하지 못한다.
민기가 어릴 때 가을이 시작되고 있는 어느 날 할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툇마루에 앉아 있었을 때였다.
민기는 할아버지에게 ‘고추잠자리를 왜 고추잠자리라고 불러요? 그리고 고추잠자리는 남자만 있나보지요, 고추라는 이름이 붙은 것을 보니.’라고 물었고 손자의 귀여운 질문에 할아버지는 고추잠자리는 수컷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암컷도 있고 또 고추잠자리라고 부르는 것은 몸이 잘 익은 고추같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말했었는데 민기는 할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그것을 그대로 여인에게 말했던 것이다.
“이해는 되지만 정확한 답은 아닌 것 같네요.
아까 그쪽이 수컷은 몸이 붉은색이지만 암컷은 오렌지색이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붉은 색 고추는 봤지만 오렌지색 고추는 못 봤거든요.
그러니 그쪽의 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네요. 호호호!”
“그렇고 보니 오렌지색 고추는 없는 것 같네요. 피망이라면 모를까….
이거 멍청함에서 벗어날 기회를 놓쳤네요.
전 아마도 멍청한 사내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래도 반은 맞았으니 완전히 멍청한 것은 아니잖아요.”
“완전한 멍청이가 아니라….
그럼 반만 맞았으니 반 멍청이군요. 하하하!”
“아이, 이제 그만하세요.
멍청하다고 안 할테니.
그런데 아까 사마귀도 암컷이라고 하신 것 같은데 그것은 어떻게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