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여름날의 소상(11)
아니 어쩌면 두 사람은 상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됨으로 해서, 그래서 자기 내면 깊숙이에 은폐되어 있는 사연이 표출되는 것이 두려워 대화를 끊고 상념 속으로 도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지나온 시간을 반추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지나온 시간이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낸 시간이라면 그 반추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픔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신들이 동행인이 없이 보길도를 찾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각자 자신을 가리워주고 있는 보호막을 한 꺼풀 벗은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것은 각자가 어떤 돌파구를 찾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바람도 불지 않았고 배롱나무 꽃잎도 날리지 않아 정원은 그야말로 깊은 적막에 잠겼다.
“참으로 적막하네요.”
두 사람 사이에 길게 누워있던 침묵을 민기가 한 웅큼 잘라먹었다.
그때 민기의 시선은 노송숲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산새를 따라가고 있었다.
“정말 적막하군요. 그러나 때로는 적막이 필요한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순간이어야지 오래 계속되는 것은 싫어요. 무섭잖아요.”
적막과 무서움.
민기는 혼란스러웠다.
그것은 적막과 무서움이라는, 조화가 되지 않는 단어를 여인은 마치 잘 어울리는 단어인양 말했기 때문이었다.
“적막한 것이 무서워요?”
민기의 시선은 여전히 산새가 날아든 노송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막한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적막 속에 숨어있는 음모가 무서운 것이겠지요.
타인이 눈치 채지 못하는 음모 말이예요.”
여인의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온 음모라는 단어가 민기의 가슴을 애리게 파고들었다.
왜 그런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으나 민기는 여인으로부터 음모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자신이 어떤 음모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일상에서 일탈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음모가 숨어있는 적막이라….’
민기는 나직이 읊조렸다.
그러나 그 읊조림 속에는 강렬한 부정이 내재되어 있었다.
“적막 속에 음모가 숨어 있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군요.
뭐랄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짙은 화장으로 본래의 얼굴을 감추고 있는 삐에로를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굳이 음모라고 해야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다른 표현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