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라는 행성이 생겨나고 인간이라는 종이 생겨났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 인연을 맺고 내가 태어났다는 것. 그것부터가 이미 희귀 사건(블랙스완)인 것이다.
나는 '써치(Searching)'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 있던 도중이라 블랙스완의 관점에서 사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딸이 어느 날 실종되고 아버지는 딸의 행방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밝혀지는 작은 사건들(나비효과)이 얽혀 실종이라는 사건(희귀 사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듯 과거의 경험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발생 가능성을 가진,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지만 일단 발생하고 나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이 생기는 일을 블랙스완이라고 한다. (ex. 9.11 테러)
저자는 내내 이런 블랙스완에 대해 경고하고 또 경고한다. 그렇다면 이런 블랙스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첫째, 우리의 인지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도록 하자.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것(혹은 현재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이 실제로 없는 일(혹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 아님을 알자. 우리가 "실제로 아는 것"과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흰 백조를 보았다."라는 "사실"이 "검은 백조가 없다."라는 "증거"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둘째, 예측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이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인 대응을 하자. 예를 들면 극히 안정적인 대상에 85-90%를, 나머지 10-15%를 가장 투기적인 곳에 투입한다고 가정하자. 안정적인 곳에 넣어둔 자금에는 검은 백조의 힘이 미칠 수 없다. 이로써 15%만 투기를 벌이기 때문에 (혹시 손실이 있다 해도) 그 이상의 손실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해로운 위험을 '잘라 내는' 셈이다.
서평을 준비하다가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와 이토이 시게사토가 함께 쓴 "솔메이트"에서 "콘도르"라는 제목의 서너 페이지 남짓한 글이 생각이 났다.
내용은 점쟁이가 7월 26일에 집 밖에 한 발짝도 나가면 안 된다고 당부하며 시작된다.
"발을 내놓으면… 그러니까, 어떻게 되나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큰 개미핥기에게 먹혀버린다든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왜요?"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그것을 상상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7월 26일. 집 안에서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상상도 할 수 없는 재앙의 가능성을 줄이는 시도를 하지만 이내 곧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에는 상상도 못 할 재앙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가지 않았고 무사히 7월 26일을 보내게 된다.
블랙스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사례들이 블랙스완에 부합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생겼고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정적인 블랙스완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그리고 긍정적인 블랙스완을 만나기 위해 실제로 나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어떤 접점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