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주제는 자유다. 인간 사회가 어떻게, 그리고 왜 자유를 성취하거나 성취하지 못했는지 이야기한다." - <좁은 회랑> 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완화되자마자 두 달째 다니고 있는 복싱장에서 운영을 재개한다는 문자가 왔다. 뛸 듯이 기뻤다. 첫째 주는 근질거리는 몸을 이기지 못해 어떻게 해서든 집에서 운동복을 갖춰 입고 매트 위에서 신나게 스쿼트를 했지만 둘째 주에 접어들자 이런 열정이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홈트 하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던가. 열 발자국만 나가면 운동을 할 수 있는 거실이 펼쳐지는데. 그러던 중 운동을 하러 와도 된다는 연락을 받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국가의 허락을 받아 마스크를 쓰면 합법적으로 운동을 해도 되는 존재가 됐다. 나는 이 사회의 성숙한 구성원이므로 기꺼이 협조하기 위해 복싱장에 나가 현재 내 체온과 휴대폰 번호를 적고 QR코드를 카메라 앞에 내밀었다. 신나게 글러브를 끼고 잽을 날리고 오며 중얼거렸다. '세상 참 살만 하군'.
그런데, 개인이 운동할 자유를 국가에게 허락받는 것은 과연 옳은가?강력한 독재적 국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좁은 회랑>의 저자들은 다양한 국가의 형태와 사회적 현상을 살펴보며 독자들과 함께 이상적이고 서로의 책임을 다하는 국가와 사회의 모습을 찾아 떠난다. 우리는 세계적 유행병 발병 시점 이후부터 국가의 허가 없이 마음대로 나설 수 없게 됐다. 마스크를 사려면 착하게 줄을 서란 말에 기꺼이 따르고, 9시 이후엔 배달 장사만 하란 말에 알겠다며 끄덕인다. 코로나19와 함께 맞이한 '뉴 노멀' 시대에 국가는 우리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 걸까?
안타깝게도 코로나19가 종식되는 그날까지, 매우 다양한 방면에서 자유를 제한할 수 있으며 시민 또한 더 많은 사상자와 감염자를 발생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집회 등의 강제 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이는 한국 특유의 사회 문화 때문에 더더욱 가능하다고 본다. 이전보다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깊게 뿌리 내려 있는 눈치 문화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 고유의 자긍심으로 한국 시민들은 그 통제에 따르며 국가에게 막강한 힘을 부여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문제는 우리 스스로 '독재적 리바이어던'의 형태를 갖출 수 있도록 막강한 힘을 부여하는 동시에 사회 구성원이 서로를 감시하는 '한국형 코로나19 규범의 우리'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서로의 빅 브라더가 되고 있다는 것. 지금은 조금 나아진 듯하지만, 3월 즈음엔 외식을 하고 왔다는 사실을 친구에게 말하는 것조차 불편했다. 말하는 순간 대역죄인이요, 방역에 이바지하지 않은 몹쓸 놈이 된다. 그 어디에서나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를 따가운 시선으로 질책하며 규범을 따르지 않은 이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규범의 우리가 지어지고 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보지만, 이런 경우 사회와 국가가 좁은 회랑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물음표가 떠오른다.국가라는 거대한 연출자 앞에서 구성원들은 열성을 대하여 대사를 읊어 대는 배우가 된 것은 아닐까?
저자는 국가와 사회가 서로를 견제하고 책임을 다하도록 고유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모습이 최고의 형태라고 말한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기꺼이 내어준 자유에 대해 '협조'해 주어 고맙다는 대우를 받고 있는데, 이 사태가 마무리되는 그 어느 날, 개인의 사소한 자유는 돌려받을 수 있는가? 혹시 지금껏 가지고 있던 독립성을 잃고 의존력만 키워지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시민은 국가가 내세우는 법과 행정력이 올바르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그 감시의 시발점은 필시 '관심'일 것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새 법안은 자연스레 권한을 중앙으로 모으고 있지는 않은지, 어째서 국회의원들은 집을 처분하느라 바쁜지, 재난 지원금을 더 지급하라 주장하는 사람의 속내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궁금해하는 일. 그것이 이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책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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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는 자유다. 인간 사회가 어떻게, 그리고 왜 자유를 성취하거나 성취하지 못했는지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