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엄마가 된 사람들이 사는 책이 있다. 하정훈 의사의 <삐뽀삐뽀 119 소아과>이다. 아이들이 걸릴 수 있는 각종 병에 대한 설명과 증상, 응가의 상태, 응급상황 시 처치법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엄마들은 그 책을 집에 들이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푸근해진다. 처음 육아를 시작하면 아이의 모든 행동과 변화에 걱정이 앞서고 조그만 증상에도 예민해지는데 막상 물어볼 곳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왕초보 엄마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너무 과민했구나 싶지만, 그땐 정말 필요한 책이었다. 몰라서, 경험해보지 못해서 모른다는 것 때문에 불안한 시기라 그렇다.
이레미디어 출판사로부터 <재무제표로 좋은 주식 고르는 법>이라는 책을 받아 조금 읽었을 때 문득 <삐뽀삐뽀..>가 떠올랐다. 이 책은 초보엄마가 어린 아이의 증상에 대해 궁금해하듯 주식에 대해 관심은 많은데 어디서부터 봐야할지 모르는 사람들, 수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입문자들을 위한 책이다. 이제야 커밍아웃하는 거지만 나는 나름 주식 3년차다. 3년 동안 애는 벌써 네 살이 되었고, 나도 초보엄마 딱지를 거의 떼었는데, 주식에서만큼은 여전히 ‘묻지마 투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용돈이나 벌 수 있을까 싶어 시작한 거였는데 어영부영 3년차가 됐다.
그래도 배운 게 아주 없진 않다. 이를테면, ‘내가 사면 떨어진다’ 라던가 ‘내가 팔면 오른다’ 등 ‘머피의 법칙’이 존재함을 체득했다. 그리고 ‘공포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라는 상식. 그런데 공포에 사고 싶어도 내가 이미 물려있으면 살 돈이 없다는 사실도. 무조건 쌀 때 사는 게 장땡이라는 것도 배웠는데, 사실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고 판단해서 사면 더 ᄄᅠᆯ어지기도 한다. 아무튼, 나의 판단 기준들은 대체로 표면적인 지표인 주가라던가 차트 추이, 외부 이슈에 국한돼 있거나 단타성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개별주식은 꺼려왔다. 개별 주식을 매매하려면 그 주식을 판단할만한 안목, 그러니까 주가가 해당 기업의 가치보다 저평가되어 있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만한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난해부터는 이미 물려있는 개별주식들은 놔두고, 코스피 지수를 추종하는 ETF 거래만 조금씩 해왔다. 그러다 최근에 들어서 재무제표를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아주 쉽게 쓰인 재무제표나 회계 관련 책들을 한 번씩 읽기도 하고, 증권사 블로그나 주식 관련 블로그들을 이웃으로 등록해놓고 읽기도 했다. 재무제표를 통해 스스로 기업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면 주가가 조금 출렁이더라도 불안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얼렁뚱땅 호기심과 날로 먹겠다는 탐욕(!!) 때문에 시작한 주식이라 기초가 없다는 게 늘 불안하고 부끄러웠다. 가치투자라는 거, 나도 하고 싶다고!
이 책을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회계 무작정 따라하기>(야마다 신야 지음)와 같은 완전 초보자들을 위한 책은 아니다. 완전초보 딱지를 떼고 이제 입문 단계에 들어선 사람에게 재무제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항목의 변화 속에 내포된 기업의 행위를 유추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섹션의 주제에 맞춰 기업의 실제 재무제표를 분석해주기 때문에 바로바로 실전응용을 할 수 있다. 자사주 매입 섹션을 예로 들면, 나는 회사 스스로 호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거나 주주 가치(혹은 항의)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사들이는 행위로만 단순히 생각해왔는데, 이 책에 따르면 회사 입장 자사주 매입은 보유현금이 줄고 자기자본이 줄어 결국 부채비율이 높아지게 된다. 그러니 자사주 매입을 단순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현 주가가 저평가된 상태인지, 경영진이 자사주를 사는 동기가 무엇인지, 자사주 매입을 위해 차입이 발생했는지, 회사 자금을 자사주 매입이 아닌 더 나은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지, 이 4가지 측면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크게 4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는 재무상태표, 제2부는 손익계산서, 제3부는 현금흐름표, 제4부는 가치투자전략이다. 전부 70섹션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이미 어느 정도 재무제표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원하는 항목을 골라서 보면 될 것 같고, 나 같은 입문자라면 하루에 서너 섹션을 정해놓고 공부하듯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아이가 네 살이 되면서 <삐뽀삐뽀..>를 들춰볼 일이 줄어들었다. 아이는 잔병치레가 줄었고, 나도 더 이상 작은 증상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엄마로서 단단해졌다. 아마도 <재무제표로 좋은 주식 고르는 법>을 몇 번 반복해서 읽는다면 투자자로서도 흔들리지 않고 주관을 갖게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수십 장으로 이루어진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면서 기업의 행위를 입체적으로 보는 시각을 갖게 되는 점도 좋다.
주가는 기업의 행위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 세계 경제, 시장 트렌드 등 무수한 정보를 반영해서 움직이지만 그래도 기본은 기업을 제대로 분석하는 게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업이 속한 섹터에 아무리 훈풍이 불어도 기업의 내실이 부족하고 경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바람을 타고 훨훨 날 수 없을 테니까. 더불어 저자 이강연(포카라)님의 블로그(blog.naver.com/pokara61)도 등록해놓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