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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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셰이커
  • 이희영
  • 13,500원 (10%750)
  • 2024-05-08
  • : 9,025
웹소설이나 웹툰에서 ‘회귀물’이라는 장르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과거로 돌아간다는 설정 자체로 그렇게 수많은 창작물이 쏟아져 나오고, 회귀물이 가진 특유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회귀물만 죽도록 판다는 사실도. 일종의 대리만족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회귀물을 통해 주인공에게 절체절명의 기회를 한 번 더 주고,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서게 함으로써 현실의 내가 느끼는 나약함 같은 것들을 보상받는 게 아닐까 하고.

<셰이커>는 회귀 판타지소설이다. 주인공 나우는 고등학교 3학년에 친구 이내를 사고로 잃는다. 오래 짝사랑해온 이내의 여자친구 하제는 이제 나우의 연인이다. 나우는 모종의 죄책감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친구의 옛 연인을 사랑한다는 죄책감. 그리고 하제가 자신을 사랑한다 해도 그 안엔 이내가 남아있을 거라는 두려움. 나우는 우연히 들어간 바에서 신비로운 바텐더가 만들어준 칵테일을 마시고 시간여행을 떠난다. 나우가 있었던 열아홉으로, 그리고 하제와의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었던 열다섯으로 그리고 하제와 자신이 가장 힘들었지만 그만큼 가까워질 수 있었던 스무살로. 그곳은 진짜 과거가 아니지만 나우는 적어도 자신이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할 기회를 얻었다. 어찌 보면 신의 배려로.

중요한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나우가 돌아갈 때마다 어떤 선택을 할지 조마조마하게 읽어내렸다. 막상 돌아가서도 머뭇거리며 돌아서는 나우가 답답하고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게 진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더 조바심이 나서 뚝딱거리고, 선택의 순간에 불확실한 미래보다 이미 알고 있는 확실한 미래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퍽 따뜻해서 나우는 다행히도 마지막 시간대에서 큰 위로를 얻는다.

청소년 도서라 학생시절이 배경으로 나오다보니 추억도 돋고(물론 그래봤자 2000년대다), 풋풋하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우정이나 사랑이 너무 무덤덤한 화제가 돼버렸지만, 중고등학생이 읽는다면 아주 간절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p.63

우물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이 있는 곳은 바로 옆 우물 안이었다.

p.103

나우가 거울 속 열다섯의 나우를 노려보았다. 저 거울 너머에서 이곳의 절대자가 자신을 한껏 비웃는 것 같았다. 강아지의 목줄을 풀어 준 것이 아니었다. 조금 더 긴 줄로 바꿨을 뿐이었다. 결국 처음 자리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빌어먹을 시스템에 갇혀 버렸다. 출구 없는 미로에서 헤매는 실험실 생쥐와 다를 바 없었다.

p.198

"조명이 비추는 곳은 환하고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텐더가 손가락을 세워 머리 위에 매달린 조명을 가리켰다.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과 행복, 감사와 평안, 아니면 불안과 우울, 좌절과 비통, 생각의 조명이 어디를 비추느냐에 따라 유독 그 부분이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겠죠.”



p.263



칠흑의 밤이 지나면 태양이 떠오르겠지. 아름답게만 보이던 세상도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줄 것이다. 별이 지고 해가 뜨듯 칵테일 한 잔에 쓰고 단 맛이 공존하듯, 인간의 시간도 매 순간순간, 여러 모습으로 흘러갈 것이다. 즐겁고 기쁜 날과 아프고 괴로운 날이 어지롭게 뒤섞여 기묘한 색으로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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