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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의 보석 가게 마석관 1
- 히로시마 레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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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05
- : 4,016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아이가 읽는 책의 글밥이라던가 내용의 수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도서관 갈 일이 요원했고, 아이는 집에 있는 책이라던가 학교에서 두권씩 빌려오는 책들로 만족해야 했다.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좋은 책을 읽고, 새로운 책을 고른다면 좋겠지만 아이의 책 읽기를 찬찬히 관찰해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책, 혹은 이미 읽었던 책들만 반복해서 보는 게 명확해졌다.
책을 반복해서 읽는 건 사실 문제가 아니다. 읽을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다면 대찬성이다. 어릴 때는 정말 좋아하는 책을 연속해서 몇 번이고 읽었으니까. 다만 지금은 몇 권 안 되는 책을 반복적으로 읽느라 다른 책 읽을 기회가 줄어든다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책을 읽는 게 머릿속 경험의 폭을 넓혀준다면 아이에겐 새로운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조금은 어린 시절의 틀에서 깨고 나올 필요는 있으니까.
<비밀의 보석 가게 마석관> 속 마석관의 주인은 특별한 돌과 보석을 수집한다. <마석관>은 이 비밀의 보석가게가 소장하고 있는 보석들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하나 소개하는 책이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에게 완전히 새로운 책이다. 이렇게 그림은 적고 글밥은 많으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할 여지가 풍부한 책은 처음일 것이다.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덕에 지루할 틈 없이 읽을 수 있다.
책을 받자마자 읽었는데 글밥이 꽤 돼도 문장이 간결하고 이야기가 흡입력이 있어서 어른의 속도로는 한 시간이면 족히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세헤라자드가 풀어놓은 우화 같이 신비롭고 흥미로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먼저 깬 딸도 앉아서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재미있느냐고 물으니 무척 재밌다고 웃는다. 좋은 신호다. 나는 아이가 꼭 교훈이 있거나 감동적인 책을 읽기만 바라지는 않는다. 지금은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고 책에 대한 흥미를 유지하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다행히 <마석관>은 재미도 있고 교훈도 있다.
미래를 봄으로써 돈을 벌게 해주었지만 결국 자신의 눈을 멀게 한 수정, 저주를 심었더니 모두를 불행하게 한 뒤 결국 자신까지 불행하게 한 루비 반지,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자 아들을 지켜준 터키석... 수정, 루비, 위석(베조아르), 묘안석, 문스톤, 터키석, 마노와 자수정, 산호 등 각종 보석들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된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들은 돌의 보석말과 관련된 작은 교훈들을 갖고 있다.
보석말은 꽃말과 같은 보석의 상징을 뜻하는데, 수정은 ‘정화’와 ‘순수’, 루비는 ‘정열’과 ‘사랑의 승리’, 묘안석(크리소베릴 캐츠 아이)는 ‘위험과 곤란의 예지’, 월장석(문스톤)은 ‘행운’, 터키석은 ‘번영과 성공’, 마노(오닉스)는 ‘부부의 행복’과 ‘성공’, 자수정은 ‘성실’과 ‘마음의 평화’, 피산호는 ‘장수’를 가져다준다고 한다.
우리 첫째는 보석말은 없지만 해독력을 가졌다는 산양의 위석 이야기를 가장 흥미로워했다. 나 역시 그런 돌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돌아가신 스님들의 몸에서 나오는 사리도 혹시 그런 작용을 하는지 아주 잠깐 쓸데없는 생각을 해봤다.
옛 사람들은 돌이나 보석에 영험한 힘이 깃들어있다고 여겼다. 그건 자연에 대해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옛 사람들의 태도는 그에 얽힌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마석관>에 나온 이야기들이 이러한 전설을 토대로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구전으로 전해져온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담아놓은 보석함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이런 전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전설을 대신하는 것이 SF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늘 미지의 영역이다. 옛 사람들에겐 예측 불가능한 불행을 가져오기도 하는 자연의 변화가 미지의 신비였다면 현대의 우리에겐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발달하는 과학과 알 수 없는 미래가 미지의 안개 속에 놓여있다.
아이들에겐 모든 이야기가 필요하다. 옛 설화도 필요하고, 사실을 토대로 한 이야기도 필요하고, 과학도 필요하고, 미래도 필요하다. 최근에 SF와 판타지에 빠져 온 관심이 그리로 쏠려있었는데 간만에 <마석관>과 같은 이야기를 읽으니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다는 저자의 다른 저서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도 궁금해졌다. <전천당>을 읽어보지 않아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미스테리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 혹은 어른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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