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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현님의 서재
  • 사람, 장소, 환대
  • 김현경
  • 14,400원 (10%800)
  • 2015-03-31
  • : 23,728
저자는 환대의 논지를 펴기 앞서 첫 장에서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이 이야기를 사건 중심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주인공 페터 슐레밀은 힘든 항해 끝에 어떤 항구도시에 내린다. 그리고 파티가 열리는 부잣집에 찾아가는데 그 안에서 회색 코트를 걸친 이상한 작자를 만난다. 그 작자는 코트 주머니에서 양탄자, 천막 심지어는 경주마까지 꺼내 보인다. 슐레밀은 이런 괴이한 상황을 보자 겁에 질려 정원으로 나온다. 정원에서 산책을 하던 슐레밀은 어느새 그 작자도 정원으로 따라나온 것을 확인한다.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는 슐레밀에게 다가오더니 제안을 한다. 금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황금 자루‘를 줄테니 자신에게 그림자를 팔라고. 당신의 그림자가 탐스럽다고. 거래를 승낙한 주인공은 자신의 그림자를 넘기고 그림자 없이 낮에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가는 곳 마다 그림자가 없다며 손가락질을 당한다. 또한 결혼할 여자를 만나지만 그녀의 부모들이 허락해주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슐레밀 앞에 악마가 다시 모습을 나타내며 이번에는 동행을 제안한다. 다시 또 제안에 응한 주인공은 동행 중에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영혼 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에는 ‘황금 자루‘를 물 속에 버린 뒤에야 악마로부터 해방된다. 이제 그림자도 잃고 황금도 잃은 슐레밀은 정처 없이 방황하는 신세로 몰린다. 그러다 우연히 한 걸음에 칠십리를 가는 장화를 얻게 되고 자연을 탐구하며 학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작품을 ‘영혼의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했던 보드리야르를 비판한다. 보드리야르는 <그림자를 판 사나이>와 스텔란 리 감독의 <프라하의 학생>을 같은 선상에 놓고, 두 이야기의 주제를 ‘영혼‘이라는 개념으로 관통시킨다.

<프라하의 학생>에서 주인공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악마에게 팔아 넘긴다. 학생의 상이 우연히 분실되거나 파괴된 것이 아니라 팔아넘겨진 것이다. 여기서 팔아 넘겨진다는 행위의 메타포는 ˝거울에 반사된 학생의 상을 하나의 사물로 주머니에 넣음으로써 상품이 물신화되는 실제 과정을 환상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악마는 거울에서 떼어낸 이미지에 혼을 불어 넣어 주인공 행세를 하며 돌아니게 만든다. 혼이 깃든 이미지가 어디를 가든 자신을 앞서가자 주인공은 이미지를 없애려고 총을 쏜다. 하지만 되레 이미지가 사라지는 동시에 주인공도 같이 죽게 된다.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결말을 ˝소외된 인간이란 쇠약하고 가난한, 그렇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 인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악이 되고 적으로 변한 인간˝이라는 점을 나타낸다고 한다.
반면에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 대해서는 ˝소외가 외관상(그림자)으로만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뿐이어서, 슐레밀은 사회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으로 이 갈등을 추상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해석하며 폰 샤미소의 사유 한계와 내용 구성을 지적한다. 하지만 오히려 김현경 저자는 보드리야르에게 되묻는다. ‘그림자 교환=상품화‘의 도식이 맞느냐는 것이다.

˝상품 사회에서 모든 것은 화폐가치로 환산되어 사고 팔린다. 그런데 악마에게 그림자를 판 뒤에 슐레밀이 직면하는 현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 이 세상에는 돈을 가지고 살 수 없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엄청난 재물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는 가는 곳마다 금화를 뿌리지만, 자신을 보고 수근거리는 사람들의 입을 막지 못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가 ˝상품 사회에서의 인간소외˝를 그리고 있다기 보다는 일종의 ‘스티그마 작용‘을 보여준다며 보드리야르의 해석을 수정한다. ˝스티그마는 낙인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노예나 범죄자의 몸에 칼이나 불에 달군 쇠로 불명예의 표지를 새겨넣는 고대 관습에서 유래하였다.˝ 신체가 괴기하거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특정 인종/민족 등에 속해 있다면 스티그마가 작동하여, 오롯이 한 사람의 인격을 조명하지 못하게 만든다. 타자로부터 스티그마의 대상이된 인격체는 특정 공동체로부터 배제될 수 있으며 반대로 지나친 베풂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림자의 상실은 영혼의 상실, 인격체로서의 상실이 아니라 자신의 사람다움을 형성해주는, 사회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외형적(신체적) 특질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낙인의 가시성은 상호작용의 가시성이다. 그 경우 낙인의 비가시화는 낙인을 재생산하는 상호작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구체적으로 자신을 낙인찍은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통해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슐레밀이 결말에 이를 때 칠십 리 장화를 발견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 속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은 근대적 환상에 불과하다. 근대에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지평선을 넘어서면 또다른 대지가, 균질적이며 단일한 척도로 부단히 이어진다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지구는 폐쇄적이며 ˝칸트가 말했듯이 ‘지구는 둥글고 그 표면적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한 ˝인간은 자신이 한번 의미를 부여한 장소를 쉽게 잊지 못하는 존재˝이다. ˝한 장소를 떠나는 것은 그 장소에 속한 다른 모든 사람들을 떠난다는 것이며, 우리의 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 뿐 아니라 우리를 기억하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그마가 작동하는 순간 절대적 환대의 논리는 철회된다. 장소는 박탈 당하고 사람으로서의 권리 또한 주어지지 못한다.

그렇다면 잠재적, 실질적 스티그마를 지닌 객체들이 어떻게 해야 환대를 받으며 사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 환대의 논지가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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