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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미님의 서재
  • 총보다 강한 실
  •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 19,800원 (10%1,100)
  • 2020-02-10
  • : 734
좋은 논문 한 편을 읽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작가가 자료 조사에 공들인 흔적이 보인다. 우리 일상생활에 접하는 직물들을 테마별로 분류하여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이집트의 미라에서 중국의 실크로드, 바이킹족들의 모직 돛, 귀한 양털 이야기, 사치의 끝인 레이스, 면과 노동력 착취 등 어느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역사적 사실과 관련 인물들에 대한 일화 그리고 소재에 관한 지식까지 모두 아우르는 책이다. 레이온에 관한 부분은 예전에 읽은 책에서 다뤘던 내용이라 다시 한번 해당 부분을 발췌독을 했다.
인권, 인종, 성별, 계급 그 모든 부분의 차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은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직물 생산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물인 직물은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곤 했다.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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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사람들은 레이스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그 돈은 절대로 그 레이스를 만든 사람들에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었던 레이스 직공들이 협회나 길드를 결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드나 협회의 유무는 대단히 중요했다. 길드는 직공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획득하기 힘든 사회적 지위를 부여했다. 레이스 직공들은 힘을 합치지 않았기 때문에 파스망트리 직공들이나 염색공들처럼 자신들의 노동이 경제적으로 가치 있다고 주장하면서 더 높은 임금과 지위를 요구하기가 어려웠다. (중략) 젠더는 다른 면에서도 레이스 직공들의 낮은 지위와 임금에 원인을
제공했다. 여성들의 절대 다수가 마치 필수과목처럼 바느질을 배웠기 때문에 레이스 산업에는 잠재적 노동자층이 아주 두터웠고, 그래서 임금이 낮게 유지되었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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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날마다 입고 사용하는 직물을 만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 지금까지 공장 노동자들 중에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쓰거나 기사로 기고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보통 의사, 활동가, 기자들이 던진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 또는 짧은 인용문 형식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주로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만 던져진다.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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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졸업 논문 SPA 브랜드 관련 주제로 썼었는데 책 뒤에 나오는 페스트 패션과 환경 문제 내용이 뜨끔했다. 논문을 쓸 당시 나는 최대 이윤과 마케팅에 포커스를 두고 사고했었던 것 같았다. 환경 보호에 대해 무지했던 지난 날의 내가 부끄러웠다. 
연장선상에서 환경보호를 달달한 로맨스로 코팅한 책인 지구에서 한아뿐은 추천하고 싶다.

이번 책은 지식 전달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을 확장시키는 것에 큰 도움을 줬다. 평소 플래그 잇 스티커를 잘 사용하지 않는데 다시 읽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 최대한 고르고 고른 페이지만 부착했는데도 꽤 많아졌다. 애착이 가는 책이라 다시 읽고 필사했다. 책에 동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영어 원서는 어떻게 나와있을지 궁금하다. 번역가 선생님 저녁 두 번 드셨으면 좋겠다! 직물에 대해 무지한 내가 읽기 쉽게 잘 번역해주셔서 읽는 내내 머릿속으로 제작 과정을 상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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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초창기 이집트 연구자들처럼 미라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보물을 찾기 위해 미라에 감긴 리넨을 북북 찢어낼 것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인이 가지고 있었던 정성과 솜씨를 배워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인류는 3만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섬유에서 실을 뽑아내고, 그 실로 옷감을 짜고, 뜨개질을 하고, 매듭을 지어 경이로운 물건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자잘한 곳까지 조금만 더 신경을 쓰자는 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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