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는 ‘낙태할 자유‘와 같은 의미지만, 다른 결이있다. 낙태죄라는 사슬을 푼 것은 자유를 향한 갈망이기 전에,
자유가 없었을 때‘ 여성이 어떤 고충에 허우적거렸는지를 간과하지 말자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P198
엄마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이런 정상가족 신화와 기-승-전-엄마 책임론이 팽배한세상에서 ‘낙태‘는 개인 신체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철학적 논의로 넘어가지 못한다. 고정관념을 도덕으로 포장하는 사회제도를 비판하는 단계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물론이다.
여성을 사람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성별과 그에 어울리는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에 따라 판단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출생률이 낮다는 이야기가 거듭되다 보면 항상 "요즘 여성들이 이기적이어서 출산을 피한다"는 식의 망언이 등장하는 것을 보라,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 그리고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는 "출산 경험도없는데" 하는 식의 말을 들어야 했다. 원시적인 상상력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떠돌고 있다.」- P201
그날 이후는 이전과 반드시 달라야 한다. 그 시작은 고통에공감(感)하는 일이다. 사실 공감이라는 뜻 그대로 그들과 ‘같은감정‘을 느낀다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세월호 침몰 장면을 TV로 보면서 느낀 먹먹함은 그들의 슬픔과 같을 수 없다. 내가 단식투쟁장 옆에서 폭식투쟁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먹먹함은 그들의 회의감과 같을 수 없다. 나의 무기력감이 그들의것과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이 간격을 줄여 나가려는 노력은 내가 해야 한다. 그들이 내 눈높이로 세상을 살지 않음을 비난해서는 안 되며, 내가 그들 눈높이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더 나은‘ 공감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아직도가 아니라 ‘여전히‘ 세월호를 붙들어야 한다. 그들이 놓고 있지않기 때문이다. 추모는 감정이 아니라 학습이다. 개인이 알아서느끼는 게 아니라 사회의 옳은 방향을 위해 지녀야 할 시민 정신이다.- P218
우리의 추모에는 이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경고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먹먹하게 누군가의 죽음을바라볼 것이고, 또 그 죽음을 조롱하는 이들을 보며 역시나 먹먹해질 것이다. 지나간 일을 왜 그렇게 붙들고 있냐는 그 생각,
추모가 밥 먹여 주냐는 그 생각, 이왕이면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나는 그 생각이야말로 엉터리 시스템이 가장 원하는 결과라는걸 잊어선 안 된다. 」-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