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한 문체 속에 그려진 잔인하고 날카로운 표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처음 책을 집었을 땐 단순히 채식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 그 정도로 단순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작품 속 그려지는 인물들은 누구보다도 평범했고, 평범한 일상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식을 시작하며 그리는 그녀의 일상은 다소 징그럽고 또 잔인하게 말을 전한다. 살이 뜯기고 피가 흘러나오는 생생함. 마치 여러 동물의 시선에서 보는 듯한 생생한 표현은 내 느긋한 발상에 물을 끼얹었다. 누구보다 평범하길 원한 남편의 청천벽력 같던 한밤의 기묘한 사건은 그만큼 채식주의자라는 소재를 새롭게 선사했다. 작 중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더워서’, ‘벗고’ 평소 외설적으로 느껴질 말들은 이 기묘한 이야기와 만나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결말 부분에서 이는 더 심화한다. 지나친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몸이 마르고, 그녀의 유일한 장점이라 여기던 ‘젖가슴’까지 비틀어져 날카로워진 그녀의 초췌한 모습은 결국 본인이 그토록 혐오하던 꿈속 이야기를 재현하고야 만다. 이렇듯 단편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단어들을 새로운 분위기로 전환한 묘사력이 돋보였다. 다른 이야기와 평행을 그리는, 이탤릭체로 쓰인 꿈의 이야기는 또한 작중엔 나아가 그녀의 심경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장치이자 소설로선 독특한 객관적인 시각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녀가 그토록 육식을 꺼리게 한 끔찍한 꿈속 경험 그리고 남편의 평범한 시선이 서로 다른 시야로 그려 독특한 시각을 주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에겐 일상처럼 여겨지던 가족의 풍경이 새로운 비판적인 시각이 되어 말한다. 누구도 ‘먹어야’ 한다고 할 뿐 왜 ‘먹는가’에 대해 질문을 내리지 않는다. ‘그래도’라고 말하며 강요를 해왔을 뿐이라고 말이다. 이는 우리 일상에 만연한 평범한 것이 강요되는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다가온다. 작중 처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브래지어’는 너무 불편하다고. 사회의 틀 안에 갇혀 사는 것의 은유인 셈이다. 그런 그녀의 불만, 그리고 자유는 다소 왜곡된 욕구로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책이 주는 영감은 사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채식주의, 젖가슴, 그리고 브래지어. 어느 하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주는 냉철함. 채식주의, 그리고 채식주의자는 그들을 포괄하는 우리가 내몬 사람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