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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정말 날 것의 <죽고 싶어하는 소녀의 자살을 방해하고,놀러 다니는 이야기>. 번역서의 제목이 훨씬 내용의 궁금함을 자아낸다.
오랫만에 읽어보는 일본소설, 거기에 타임슬립을 살짝 버무린 로맨스 소설이라고 해야할 듯 싶다. 묵직하고 하드보일드한 일본 소설을 많이 접했던 기억 때문에 적잖이 부담스러운 시작이 되었었지만, 인터넷소설 대상이라는 부분에서 부담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학과 필수과목으로 항상 일본문학을 번역해보고 내용을 파악해보는 그 악몽같은 시간들이 떠올라서 아마도 짐작컨데 일본소설을 멀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벌써 이 책을 받자마자 주인공들의 한자 이름을 해석하려고 난리부르스를 쳤던 부분부터가 잘못되어 있었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깜빡 하고 있었던 것이다.
<디어 프렌즈>와 같은 한창 귀요니 소설이 일본에도 번성하던 시기. 그때만큼은 자유롭게 세로 읽기가 아닌 가로읽기로 즐기면서 일본소설들을 가볍게 즐길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걸 감사하게 여기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본의 사신들은 뭔가 문제가 많은 듯 하다. 이래저래 소설에 등장하는 사신들은 허당끼가 있어. 이 소설은 제목에서도 암시되듯 자살을 하려고 마음 먹은 12월 25일 눈오는 다리 위에서 아이바 준은 사신(자꾸 데스노트의 사신 이미지가 망상을 망친다)을 만난다. 은색 시계 위에 각인된 뱀모양의 '우로보로스 은시계'를 주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대신 3년 이후의 목숨을 내놓기로 한다. 자포자기 심정이었던 아이바는 사신과 거래한다. 비슷한 시기 자신이 죽기 마음을 먹었었던 그 다리에서 죽게 된 소녀인 이치노세 쓰키미를 살리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을 되돌리며, 그녀의 자살을 방해하며 막으려 한다. 원제처럼 정말 계속 그 생각을 막기 위해서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등 그녀에게서 자살을 포기하게 끔 만들려고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작은 선행이라도 하고자 함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둘은 밀고 당기듯하다 어쩔 수 없이 서로 끌어당기게 되고 남은 시한부인생의 반년동안의 애틋함을 아이바는 끊어내고자 노력하는데...
역시 내 연애세포는 다 죽어버린 듯 하다. 이래서 <스물 다섯, 스물 하나>를 열정적으로 몰입해 보지 못했나보다. 청춘들의 꽁냥꽁냥한 사랑이야기가 뻔하다고 느껴지면서도 마지막으로 흘러가는 결말이 새드엔딩이길 바라는 못된 심보가 슬슬 발동한다. 그러나 내가 가볍고 만만하게 봤던 이 소설은 352페이지의 아쿠아리움이라는 단어에서 뒷통수를 크게 후드려 맞은 듯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설마 진짜 그랬다고?
설렘 가득한 청춘 로맨스와 타임슬립 거기에 살짝 반전을 버무린 소설을 원한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일본소설이 다 무겁지만은 않다는 것.
굉장히 세련되거나 엄청난 의미를 부여한 진부한 글귀들은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매력은 뒷장의 "작가의 말"에 다 담겨 있었다. 세이카 료겐이 어떤 사람인지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이 글을 써준 것 자체만으로도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어떤 힘이 느껴졌다. 소설을 다 읽고 꼭 "작가의 말"을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