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균열을 드러낼 때, 세상이 우리로 하여금 마음씀(care)을 일으키고 우리의 돌봄(care)을 청할 때, 비로소 시민과 시민적 행위가 등장하게 된다고 말이다. 세상을 향한 마음씀/돌봄(care for the world), 이것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시민적 정서이자 시민적 덕목인 셈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에서 이 정서와 덕목에 힘입어 출현한 시민들이 있다. 이탈리아의 만화가 밀로 마나라에 따르면 그들은 바로 ‘돌보미 시민‘이다. 그들은 간호사이고 의사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 위험을 무릅쓰고 사적 공간에서 나와 공적 공간을 지킨 사람들, 곧 슈퍼마켓의 계산원 노동자이고, 거리와 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한 청소 노동자이며, 경찰 공무원이고, 트럭을 모는 운송 노동자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이 모든 인물을 여성으로 그렸는데, 이는 이들이 수행하는 핵심 활동이 통상 여성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돌봄, 또는 재생산 노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p.242-243)
어떤 이들은 이들 돌보미 시민을 영웅으로 칭송한다. 하지만 그들을 영웅으로 칭송하는 것은 자칫 지금처럼 열악한 조건에서도 영혼을 갈아넣기를 그들에게 은근히 종용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보다는 그들이 초인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그들이 자신의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각종 장비와 조건이 필요하고, 그들 역시 연약한(따라서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그들이 우리를 돌봤다면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돌볼 차례다. 우리가 그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다음 번 비상사태에 그들은 없을지 모르고, 그러면 이번에 다른 곳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사회는 훨씬 더 크게 무너져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