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겐 약간의 강박이 있다.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볼 때 그 작가의 작품을 출시된 순으로 따라가고 싶다는 강박.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먹고 살기 힘든, 바쁘디 바쁜 세상 속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영화나 소설은 그나마 따라갈 수 있지만 철학으로 넘어오면 엄두가 나질 않는다. 철학서는 소설에 비해 읽는 속도가 느리고, 또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내용 또한 많다보니 2차 저서를 이용하거나 강의를 들어야 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고 싶은 철학자의 글들은 너무 많다. 칸트, 헤겔, 레비나스, 데리다, 랑시에르 등등..
그래서 철학은 더더욱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소피의 세계>를 한 번 읽고 한 명의 철학자를 고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소피의 세계>를 읽자마자 나에게 <필로소포스의 책읽기>가 도착했다. 몇 장 읽지 않았는데 들뜬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소피의 세계>는 철학사를 관통하는 느낌이라면, <필로소포스의 책읽기>는 나에게 철학자들을 제안해주는 느낌이었다. 철학자들의 철학 핵심을 저자의 의견을 붙여서 해석해주는 몇 페이지의 짧은 내용들이 이어졌다. 예를 들어 내가 관심있는 프로이트라고 한다면, 프로이트의 이론을 짤막하게 소개하고 그 후로 당대의 비판들을 수렴하여 저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설명한다.
이건 아주 오래 전 비디오 가게에서 어떤 영화를 볼 지 고르던 매월 책자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책자는 객관적 스토리만 나열되어 있다면, 이 책에서는 저자가 생각하는 철학자의 쟁점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저자의 주장을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데까지 간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철학으로 진입하려는 이들의 첫 번째 책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문제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한 철학자들의 리스트가 많아졌다는 것 뿐이다.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고, 앞으로의 시간들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