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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Hyung Chul님의 서재
  • 스파클
  • 최현진
  • 13,500원 (10%750)
  • 2025-04-11
  • : 19,070



어딘지 모르게 투박한 문장들은 어색함을 불러오지만, 동시에 꾹꾹 눌러쓴 작가의 고민이 느껴진다. 유려하진 않지만 인물들의 마음에 가닿으려는 흔적들이 보이고, 몇몇 설정들은 부유하면서도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단연코 그 '부유하는 감각'이다. 어딘가로 떠밀려가는 듯한 10대 시절의 그 아득한 감각은 유리의 눈에 맺힌 눈송이, 겹겹이 쌓인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 꿈속의 설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를 그 부유감은 죄책감과 채무감을 지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한 소녀의 여정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15년 뒤를 상상하는 유리의 소설은 결국 소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단언컨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일은 돌고 돌아 결국 일어날 것이라고도 말할 것이다. 우리가 지켜본 유리의 여정처럼, 앞으로의 유리 역시 정해진 길로만 달려나갈 순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응원할 것이다. 아니, 응원해야 마땅하다. 언젠가 이영준이 썼을지도 모를 숟가락으로 밥을 퍼먹는 유리처럼, 언젠가 내가 겪었던 그 나날들을 유리가 겪을 테니까. 힘내라. 세상이 녹록지 않아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은 결국 카트만두에 도착할 것이다.

 

같은 반 아이에게 고백을 받았는데

내 갈색 머리가 좋대

내가 입는 옷들이 자기 취향이래

눈을 마주치지 않으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늘 궁금하대

얘기를 듣고 나는 놀랐어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나를 본다는 건 꽤 낯선 일이야

나는 사진도 잘 찍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동안 내가 어떤지 잘 모르고 지낸 거 같아

어쩌면 그만큼 스스로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거겠지

거울을 들여다봤어

분명 나인데도 눈을 맞추기가 힘들어

(p.31)

 

시온이 자기가 밥을 사겠다고 했다. 눈송이처럼 하얀 고슬밥이 나오자 기분이 좋아졌다. 이영준도 친구와 와서 밥을 먹었을까. 나는 언젠가 이영준이 썼을지도 모르는 숟가락으로 밥을 펐다. (p124)

 

빛은 0.5 밀리미터밖에 되지 않는 얇은 막을 통해 들어온다. 각막은 눈의 창문이다. x의 창은 금이 가거나 깨어진 적 없었다. 창은 나의 일부가 됐다. (p.189)


*출판사에서 가제본을 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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