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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Hyung Chul님의 서재
  • 드디어 만나는 지리학 수업
  • 이동민
  • 17,910원 (10%990)
  • 2025-03-07
  • : 2,100

어느 순간부터 어렸을 때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어른들의 말처럼 직업이나 수입에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알고자 하는 욕망에 의한 후회였다.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대학의 타이틀이나 직업, 수입에 연연하지 않고 순수하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고 공부할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의 노동은 인간을 너무나도 지치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서 <드디어 만나는 지리학 수업>은 반가웠다. 기초부터 탄탄히 지리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말 그랬다. 책을 읽자마자 탄식이 터졌다. 아, 제리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읽기 전에 읽을걸. <총균쇠>를 읽었을 때가 벌써 8년이나 지났다. 당시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하며 넘기고, 어떤 부분은 검색에 의존하였고, 어떤 부분은 내 멋대로 받아들였다. 물론 <드디어 만나는 지리학 수업>을 읽는다고 <총균쇠>를 이해하기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좀 더 친근한 상태에서 몇몇 용어들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것 같다. 이 책은 중고등학생 정도의 수준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오히려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된 나 같은 사람은 등고선이라는 반가운 단어가 곳곳에 등장하여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열대기후 (생태계의 보고이자 인류의 고향) – 쾨펜은 최한월 평균기온이 섭씨 18도 이상인 기후를 열대기후라 분류.

열대우림기후 – 일 년 내내 많은 비가 내리는 유형. 연평균 강수량 2000밀리미터가 넘고, 매월 고르게 내린다.

건조기후(나무와 작물이 자라지 않는 땅) – 기온이 아니라 강수량으로 구분. 연평균 강수량이 500밀리 미만인 경우.

온대기후 (서구 문명을 꽃피운 살기 좋은 땅) - 최한월 평균기온이 영하 3도에서 영상 18도, 최난월 평균기온이 영상 10도 이상인 기후.

냉대기후 (혹한의 겨울과 최소한의 여름) - 최한월 평균기온이 영하 3도 미만이되, 최난월 평균기온이 영상 10도 이상. 온대기후보다 겨울이 확실히 춥지만, 길든 짧든 여름이 있는 기후.

한 대기후 (순록의 땅 툰드라와 영구동토의 남북극) - 최난월 기온이 영상 10도에 미치지 못하는 기후. 여름다운 여름이 없는, 일 년 내내 추운 기후.

고산기후 (잉카 문명을 꽃피운 고원) - 강수량은 적지만 고산기후 덕분에 기온이 비교적 온화.

 

여행을 갈 때면 그 나라의 날씨를 검색하지만 위 내용처럼 기후별로 나와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확한 뜻은 몰라도 누구나 대충 알지 않나.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정확한 정의를 정리했다. 물론 곧 까먹겠지만.

 

(...)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제국 정부는 독일을 온전히 통합할 해답을 지리학에서 찾습니다. 독일의 지리를 제대로 교육함으로써 독일제국 내의 사람들이 다 같은 땅에 사는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주겠다는 발상이었지요. 그로 인해 독일의 여러 대학에 지리학과가 개설되었고, 초중등학교에서도 지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근대 지리학과 지리교육은 이렇게 국가와 국토의 와전한 통일이라는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비로소 결실을 맺기 시작합니다. (p.121)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기하게도 지리학은 내집단으로 묶어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북한 사람들과 한민족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38선이 그어진 지 70년이 넘은 지금은 완전히 다른 국가라고 인식하고 있다. 물론 구분 지음이 대부분 나쁜 쪽으로 흘러가지만, 이러한 특성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독일 근대 지리학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라첼은 인간 사회와 문명이 각 지역의 다양한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을 토대로 형성되며 서로 다른 문화의 지리적 전파를 통해 변화 발전한다는 논의를 펼쳤습니다. 이를 통해 지리학의 핵심 주제인 인간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지리적으로 연구하는 방식을 한층 더 체계화했습니다.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 각 문화와 지역의 특성으로 이어진다는 관점은 이미 이전부터 존재해왔지만, 라첼은 문화의 전파라는 새로운 요인을 더함으로써 단순히 환경이 좋은 곳은 문명이 발달하고 그렇지 못한 곳은 문명이 덜 발달한다는 식의 단순하고 일방적인 도식을 벗어납니다. 이를 통해 지표공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지역과 문화, 문명의 지리적 의미를 한층 현실적이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길을 열었지요. 나아가 그는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지리적 영역의 확보가 국가나 민족집단의 흥망성쇠에 직경된다는 레벤스라움 이론을 발표했고, 이 이론은 스웨덴의 루돌프 쉘렌, 독일의 카를 하우스호퍼 등이 계승하여 근대 지정학의 기초가 됩니다. 이러한 라첼의 이론들은 인간 활동이 자연환경에 강한 영향을 받아 결정된다는 환경결정론의 성격이 강하며, 실제로 라첼은 환경결정론적 지리학의 제창자라고 평가받습니다. (p.124)

 

개인적으로 환경결정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한국 내부에서도 이러한 의견을 지지한다. 서울과 인천, 경기라는 수도권 지역의 세 곳만 구분해 봐도 알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서울과 인천만 비교해놓고 보아도 교육 수준의 차이가 크며 인식의 간극은 엄청나다.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인천의 교실 분위기는 지극히 공부를 하면 이상한 아이로 치부되었었다. 고2가 지나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그 분위기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이상한 분위기였다. 서울에서 자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이 이상한 친구로 치부되었다고 한다. 이 뿌리를 찾아보진 않았지만 환경은 다양한 요소들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수많은 지리학자가 활약하던 20세기 초반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지리학자를 꼽으라면 바로 미국의 리처드 하츠혼을 들 수 있겠습니다. 하츠혼은 대표 저서인 <지리학의 본질>에서 지리학을 지역의 고유하면서도 종합적인 속성인 지역성을 규명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지역성이란 그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단 의식을 바탕으로 구성된 속성이라고 규정하지요. (p.129)

 

실존주의가 전 세계를 매료하던 1970년대에는 인간주의 지리학이 큰 주목을 받습니다. 인간주의 지리학은 지표공간을 객관적인 실체인 공간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애착 감정 정체성과 같은 주관적인 성격도 결부된 장소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장소에 대한 주관적인 감수정, 즉 장소감을 강조한 인간주의 지리학은 지표공간을 인간이 지닌 정서와 감정, 심리의 차원에서 바라보게 하여 지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p.134)

 

자본주의의 모순과 불평등을 지리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데이비드 하비이지요. 마르크스주의를 지리학에 접목한 하비는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노동과 생산, 자본의 축적(자본의 1차 순환)은 토지 위에 세워진 건물, 시설, 인프라 등의 건조환경을 통해서 화폐 신용 금융 경제의 형태로 구체화(자본의 2차 순환)하며, 그러한 지리적 토대 위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은폐하고 체제를 유지하는 기술 혁신과 사회적 지출이 이루어진다(자본의 3차 순환)고 설명합니다. 즉,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노동, 생산, 자본과 같은 추상적인 경제 요인뿐만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 환경적 맥락까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울러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되어 교환가치를 부여받은 토지와 건조환경이 그 자체로 투기 수단이 되면서 사회의 불평등을 악화하고 결국에는 부동산 거품의 붕괴에 따른 공항과 경제 위기를 불러온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p.136)

 

실존주의와 자본주의까지 지리학과 연계된 점은 참 신기했다.

 

이처럼 동종의 산업체나 기업체가 한곳에 집중해 있는 현상을 ‘집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메뉴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집적해 있는 먹자골목이 가게가 하나하나 떨어져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현상을 공간적 외부성에 따른 집적경제라고 부릅니다. (p.197)

 

어머니가 지방에서 카페를 하는데, 어느 날 그 근처에 카페가 들어왔다고 했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위 부분을 읽고는 안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윈윈이라는 말이 옳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 때 외국인들 대상으로 무료 백신 접종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들었었지만, 누군가 외국인들이 백신을 맞아야 우리가 코로나로부터 안전하지 않겠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혐오와 차별, 구분 지음은 결국 비극만 불러온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요즘이다.

 

또 하나 놀라웠던 점은 서원을 이야기할 때였다. 과거 교실에서 앞문은 선생님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뒷문은 학생들만 출입할 수 있었던 공간이 떠올랐다. 물론 학교 건물을 들어갈 때도 중앙 현관은 교사들이 들어갈 수 있었고 양쪽 끝에는 학생들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런 점이 성리학적 질서에서 온 것이었다니. 놀라운 사실이었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가 확대되면서 낙후된 구도심이 재생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 구도심은 세월이 오래되어 건물들이 낡고 도로 폭도 좁은 경우가 많지만, 여ᄀᆞ 깊은 구도심일수록 오래전에는 화려하게 번영했던 곳이기 때문에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공간이기도 하지요. 접근성도 좋은 편이어서 낡은 건물과 시설을 정비하면 마치 ‘고품스럽게 차려입은 영국 신사’와도 같은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곳입니다. 사실 애당초 글래스가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하여 문제의식을 가졌던 부분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구도심에 거주하던 노동자 계층과 저소득층이 역으로 구도심에서 밀려나 외곽으로 이주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글래스가 착안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바로 지대, 즉 땅값이지요. (p.289-291)

 

이 책은 기초 개념이기 때문에 술술 읽히지만 순간 멈칫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워낙 우리나라는 땅에 예민한 나라이며, 여러 역사적 사실들이 지정학적 문제로 발생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섬뜩하기까지 한 순간들 말이다. 하지만 기술은 선악이 없고, 기술을 사용하는 자의 문제이듯 학문 또한 마찬가지다. 이 책은 그저 사실을 서술한다. 그뿐이다. 기본에 충실하다. 그래서 누구나 읽기 좋다. 이제 이 책을 다 읽었으니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이푸 투안의 <공간과 장소>가 흥미로워졌고, 그리고.. 다시 책꽂이에 꽂혀있는 <총균쇠>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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