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나의 독서 분야는 소설이나 인문학, 예술, 철학 등에 속해있다. 자기개발서는 10년 넘게 한 권도 읽은 적이 없고,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사람의 에세이가 아닌 에세이는 읽지 않는다. 건강 서적도 물론 잘 읽지 않는다. 다만 건강 서적의 경우는 좀 다른데, 개인적으로 인간의 몸에 관심이 많아서 꼭 읽고 싶었던 분야다. 수면이나 인간의 근육, 뇌, 장의 경우는 항상 나의 관심사였지만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좋은 기회로 처음으로 장에 관한 책을 읽어 보았다. 수면이나 뇌과학의 경우 몇 권의 책을 읽었지만 다른 분야들처럼 계속 이어가진 못했다. 게다가 난 문과 출신이고, 과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 의학 관련 서적은 벅차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분야에 어떤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는 쉬웠으며, 저자의 주장이 정신분석학 분야의 책을 즐겨 읽는 나에게는 좀 반가운 면도 있어서 흥미롭게 읽어 나갔다.
교통체증으로 짜증이 나면, 뇌는 얼굴 근육에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특정 신호를 소화계에도 보낸다. 그러면 소화계 역시 극적으로 반응한다. 갑자기 끼어든 차 때문에 화가 났다면, 위는 격렬하게 수축하면서 위산을 더 많이 분비하며, 아침에 먹은 음식의 소화 작용을 늦춘다. 그동안 장은 뒤틀리면서 점액과 여러 소화액을 분비한다. 불안하거나 심란할 때도 이와 비슷하지만 다른 패턴이 나타난다. 우울할 때는 장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장은 뇌에서 생기는 모든 감정을 거울처럼 비춘다. (p.45)
이 책의 주장이 신기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이나 언어 속에 묻어있는 것들을 전문가가 믿을 수 있게 이야기해 주는 것만 같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난 채로 음식을 먹으면 체한다는 것은 모두가 어려서부터 들었던 말이지 않은가. 추운 날 밖에서 거리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가. 하지만 신기한 건 다음 문단이다.
입사 면접을 앞두고 걱정하거나, 교통 체증에 갇혀서 잠깐 짜증이 나거나, 약속에 늦어서 마음이 급하고 불안한 경우의 장반응은 정상적이며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화, 슬픔, 되풀이되는 공포 같은 감정이 만성적으로 나타날 때는 그런 감정이 장과 장내 미생물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유념해야 한다. (p.69)
저자는 급성 스트레스는 이따금 우리 몸에 도움이 된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급성 스트레스가 반복되어서 만성 스트레스로 변화하면 그때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급성 스트레스가 몸에 좋을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알고 있는 것 아닐까. 나는 3-4개월 단위로 일을 하는 프리랜서로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일의 강도는 무척 높았고, 잠을 못 자는 건 부지기수며 몸에 좋지 않은 음식도 많이 먹었다. 하지만 일을 하는 동안 아팠던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일을 마치고 난 다음 1-2주의 휴지기를 가질 때 아팠던 적이 많다. 몸이란 건 참 신기하다.
톡소포자충은 오직 한 장소에서만 번식할 수 있다. 바로 고양이의 위장관이다. 톡소포자충은 원치 않는 영향으로부터 뇌를 격리하고 보호하는 방화벽 역할을 하는 혈액뇌장벽을 속임으로써 인간을 포함한 모든 포유동물의 뇌에 침투할 수 있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고양이는 배설물을 통해 이 미생물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 그래서 산부인과 의사는 임산부에게 고양이와 고양이 화장실을 접촉하지 말고, 고양이가 배설물을 흙 속에 묻을 수 있는 정원에도 가까이 가지 않도록 권고한다.
톡소포자충의 이상적인 세계에서는 고양이가 톡소포자충이 든 배설물을 배설하면, 쥐가 그 배설물을 섭취한다. 그러면 그 기생충은 쥐의 몸 전체에서, 특히 뇌에서 둥그런 형태의 낭종을 형성한다. 다음에는 톡소포자충에 감연된 쥐를 고양이가 잡아먹는다. 소화된 낭종은 고양이의 위장관 안에서 번식하고, 고양이는 새로 부화한 기생충을 배설물로 배출하며, 이렇게 톡소포자충의 생명은 순환하며 계속된다.
여기서 이갸기가 흥미로운 방향으로 전환되며 이 미생물의 놀라운 영리함을 증명해준다. 정상적인 환경에서 쥐는 본능적으로 고양이를 피해 다니므로 톡소포자충은 감염된 쥐에서 고양이에게 되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를 잃어버릴 뿐 아니라 고양이 소변 냄새가 나는 장소를 좋아하게 된다. (p.110-111)
굉장히 흥미로운 세균인데, 세균 자체가 번식을 위해 숙주의 뇌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새겠지만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나’의 주인은 ‘나’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그 유명한 이론이 이제는 프로이트가 주장한 방식이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들로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뇌가 유년기의 불운한 경험에 반응해서 재정렬되며, 이 상태가 평생 지속될 수 있다는 걸 최초로 증명했다. (p.149)
나는 위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프로이트의 이름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많은 것들이 유아기에 결정된다고 믿었었고, 그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은 근거들을 살펴볼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장기들까지 유년기에 지배된다니!
예후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후손이 성인이 되면 자신은 트라우마를 겪지 않았더라도 우울증, 불안,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등 정신질환을 겪을 위험이 크다는 획기적인 발견을 발표했다. 이후 몇몇 부가적 연구가 스트레스와 역경의 '세대간 전이'가 존재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대피했던 사람들의 후손에 관한 연구나,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네덜란드 기근으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후손에 관한 연구가 포함된다. (p.150)
더 놀라운 것은 위의 문단이었다. 우리의 어린 시절 가정 환경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걸까. 프로이트는 성인이 되었을 때 배우자마저 어린 시절에 결정된다고 믿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놀라운 것은 프로이트가 했던 주장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유년기에 결정된다는 게 밝혀지는 것이다. 위 문단은 후성 유전 문제인데, 경험이 유전에 기억되고 그 유전이 자식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난뿐만 아니라 아주 많은 것들이 대물림된다는 끔찍한 사실이다.
모체의 질내 미생물군은 태아의 장내 미생물군의 씨앗이 된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은 쥐들은 장에 유산균이 더 적은 새끼를 낳았다. 스트레스를 받은 어미 원숭이의 새끼가 장 속 유산균 수가 더 적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스트레스의 영향은 새끼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와 뇌회로의 평생 지속될 구조가 형성되는 중대한 시기에 나타나므로 특히나 중요하다.
그러나 어미쥐의 스트레스는 새끼쥐의 장내 미생물에 영향을 미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새끼쥐의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 베일 연구팀은 새끼쥐의 장내 미생물이 생성하는 분자 혼합물을 분석했다. 그래서 새끼쥐의 뇌사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분자에 변화가 생겼으며, 빠르게 발달하는 뇌의 성장을 돕고 특정 뇌영역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을 형성하는 아미노산 공급이 감소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p.159)
신생아의 장관에 질내 미생물군이 들어가야 아기가 건강한 삶을 시작할 수 있으므로, 과학자들은 제왕절개 분만이 아기의 미래 뇌 건강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지 연구하고 있다. 브라질이나 이탈리아 같은 일부 국가에서 자연분만보다 제왕절개술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비율이 더 높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제왕절개술을 시행함으로써 질을 통해 정상적으로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아기에게 프로그래밍하는 것을 '건너뛰는'일이 뇌 발달에 미칠 장기적 영향은 아직 알지 못하지만, 지금은 제왕절개술로 태어난 아기의 장에는 어머니의 질내 미생물이 아니라 어머니의 피부, 산파, 의사, 간호사, 그리고 분만실의 다른 아기의 미생물이 서식한다는 사실과, 비피두스균 같은 중요 유익균이 장에 정착하는 데는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기보다 오래 걸린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 과학자들은 제왕절개술로 태어난 아이들은 뇌-장 축 변화와 자폐증을 포함한 심각한 뇌질환에 더 취약하다고 의심하고 있고, 이를 입증하기 위한 몇 가지 연구가 진행 중이다. (p.163)
이 책의 한계일 수 있는 지점은 연구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부분들을 추측한다는 것이다. 한계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실험들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제왕절개술을 시행함으로써 아기의 뇌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많은 어머니들은 고통받을 수도 있다.
알다시피 모든 스트레스가 나쁜 건 아니다. 만성적이거나 재발하는 스트레스와 달리 급성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각성상태는 시험을 치르거나 강연을 하는 등 어려운 과제를 수행할 때는 도움이 된다. 또한 장관감염에 대한 방어를 강화하여 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 예컨대 스트레스 관련 뇌신호에 반응해서 위산 생성을 늘려 음식을 통해 침입한 미생물이 장에 도달하기 전에 사멸될 가능성을 높인다. 또한 장에 신호를 보내 체액 분비를 늘리고 병원균이 든 내용물을 배출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디펜신이라는 항균성 펩타이드 분비를 증가시킨다. 이 모든 반응이 위험할 수 있는 침입자로부터 위장관을 방어하고 감염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것이다. (...) 급성 스트레스가 장과 장내 미생물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더라도 너무 자주 반복되면 골칫거리가 된다. 만성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p.189)
장내 미생물 오케스트라는 노련한 음악가들로 꽉 차있고,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연주할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가 어떤 식단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곡뿐만 아니라 연주 실력도 결정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 교향곡의 지휘자다. (p.269)
저자는 유년기에 자리 잡은 미생물 생태계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 장에 자리 잡은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태계를 오케스트라로 비유했을 때, 우리는 지휘자가 되어 어떤 음악가들이 연주를 하게 할지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미생물 군들 중에서도 좋은 미생물들이 활동할 수 있게 우리가 우리의 생태계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방법으로 몇 가지를 제안한다.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연 발효식품과 프로바이오틱스를 정기적으로 최대한 섭취하는 것.
동물성 지방을 줄이고, 가능하면 가공식품보다 유기농 식품을 선택하라. 이를 통해 장내 미생물이 염증을 일으킬 가능성을 낮춰라.
식사량을 줄여라. 특히 식사에서 고지방 식품을 제한하자.
태아의 영양상태에 주의를 기울이자.
스트레스를 줄이고, 내 몸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도록 훈련하자. (명상 등)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났을 때, 슬플 때 음식을 먹지 말자.
음식의 은밀한 즐거움과 사람들과 함께 먹는 즐거움을 누리자.
자신의 직감에 귀를 기울이는 전문가가 되자.
결국 장은 제2의 뇌이며, 우리는 이 장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뇌에게 다양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