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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대, 말의 숲을 거닐다
  • 권정희
  • 19,800원 (10%1,100)
  • 2025-12-05
  • : 130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단어를 공부하는 것이다. 영어 공부에서도 기본이 문법이라고 하지만, 결국 우리가 말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는 핵심은 단어를 통해 어휘력을 쌓는 데 있다. 단어가 많아질수록 생각을 더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고, 감정을 더 섬세하게 전달할 수 있다. 이번에 읽은 <그대, 말의 숲을 거닐다>는 이런 ‘단어의 힘’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맞춤법과 단어를 강의하며 수강생들과 함께 길어 올린 경험과, 문학 속 표현을 연구해 쌓아온 작가의 노력이 한 권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우리가 평소 익숙하게 사용하는 단어나 교과서에서 배웠던 단어를 단순히 나열한 목록이 아니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지만 글쓰기에서 활용하면 굉장히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우리말 단어들을 선별해 소개한다. 게다가 단어를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단어가 실제로 쓰인 소설 속 문단이나 문학 작품을 함께 실어두어 단어의 감각적 울림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단어 하나가 문장 속에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는지, 어떤 색깔을 입히는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단어를 공부하는 동시에 문학의 한 장면을 읽는 것처럼 풍성한 경험을 준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책 속 ‘쉬어가는 페이지’도 매우 인상 깊었다. 단순한 쉬어감이 아니라, 단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언어생활이나 말의 태도 같은 것들을 다정하면서도 깊이 있게 풀어낸다. 우리가 늘 쓰는 말 속에도 편견이나 무심함이 숨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어떻게 더 배려 있고 정확한 표현으로 바꿀 수 있는지 실제 사례를 통해 알려준다. ‘파출부, 가정부, 식모’ 같은 단어를 무심코 사용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위화감이나 비하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짚어주며, ‘가사 도우미’라는 단어가 왜 더 적절하고 서로의 노동을 존중하는 표현인지 설명한다. 단어 하나의 선택에서 존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자주 틀리곤 하는 외래어 표기법을 다루면서 왜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과 실제 표준 표기가 다른지 쉽게 설명해 준다. 그동안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표기가 사실은 잘못 알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부분이라 실용적이기도 하고, 작게나마 언어 감각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경상도 방언 ‘짜치다’에 대한 설명이다. 경상도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듣던 단어였지만 정확한 뜻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책에서는 이 단어가 ‘쪼들리다’ 혹은 ‘힘들다’는 의미를 담은 방언이라고 밝히며, 작가가 연애로 힘들어하던 시절 경상도 출신 선배에게 “너 그렇게 짜치고 있는 모습 보기 좋지 않아”라는 말을 들었다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일상에서 쓰던 말이 이렇게 문학적 맥락과 맞물려 설명되니 단어 하나에도 지역의 정서나 문화가 깃들어 있다는 점이 새삼 흥미로웠다.


이렇듯 이 책은 지루한 단어장도 아니고 딱딱한 맞춤법 책도 아니다. 단어를 매개로 우리말이 가진 감정, 뉘앙스, 역사, 그리고 표현의 힘을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해주는 책이다. 읽다 보면 말의 무게와 아름다움이 동시에 느껴지고, 단어 하나를 선택할 때의 세심함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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