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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책] 채식주의자 : 한강 연작소설
  • 한강
  • 8,400원 (420)
  • 2014-07-31
  • : 6,078
과연 명작이다. 구매 동기는 이미 유명했던 작품이어서 어떤 지 궁금했고, 미리보기로 보아도 흥미가 가서 구입하고 싶어져서.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읽어서 그런가 비슷한 느낌인데 더욱 예리하고 더욱 과감하게 현실을 드러낸 느낌이다. 82년생 김지영이 얼큰한 라면이라면 채식주의자는 체한 속을 풀어주는 탄산음료나 까스활명수같은 느낌이랄까. 82년생 김지영이 페미니즘 도서라고 까이던데 저건 사실만 읊은 책일 뿐 채식주의자가 더한 것 같은데...
어쨌거나 왜 이 작품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는가 함은 읽고나서 이해가 갔다. 현실을 너무도 잔인하고 예리하게 잘 담아낸 작품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의 독서인데도 불과하고, 어쩔 수 없이 한번 끊긴 것을 제외하고는 끊기지 않고 하루만에 다 읽었다. 그만큼 흡입력이 장난 아니다. 
불편하면서도 잔인한 아름다움이 중간중간 느껴진다. 몸에 꽃이 그려지며 점점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주인공과, 피흘리는 새, 피가 묻은 어지러운 꿈 등등...지금 쓰고 보니 전문가들은 피와 병원복 색깔의 대조 이런걸로도 의미를 담겠지. 나는 그걸 '아름다운 표현'으로 퉁치려한다. 나는 그런 깊은 감상문은 쓰지 않고 전체적인 느낌을 다소 두서없이 써보려고 한다.
채식주의자를 읽기 전에는 이 책이 쭉 이어진 하나의 소설인 줄 알았는데 노노노. 여러편의 단편소설이다. 단편마다 시점만 변경하면서 등장인물은 그대로인데 주인공은 바뀌고, 덕분에 등장인물마다 여과되지 않은 깊은 생각과 감정의 스펙트럼을 돌아가면서 매우,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채식주의자의 힐링적인 행복한 삶 이런 내용이 아니다. 한국판 표지만 봐도 그 나무 일러스트의 분위기에서 살벌함이 흐른다 (해외판은 일러스트가 다르다).
채식주의자는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저항과 좌절, 각종 폭력에 대한 저항을 담은 소설이다. 첫 저항은 주인공이 자기만의 의견을 남편에게부터 입을 떼는 것으로 시작하여 자신의 존재와 인간적 특성을 알리는 것으로부터 사회에 대한 저항을 시작한다. 이 소설에서 각 남편들은 아내를 생각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 꾸준히 실제랑 다른 왜곡되고 상상된 어떤 이미지에 아내를 대입한다(남편들의 시점에서 쓴 부분을 보면 느낄 수 있다). 과거 여러번 연애를 하면서 끊임없이 애인을 대상화하며 어떤 환상에 애인을 깎아맞추는 걸 겪었던 나와 주위 동성들의 연애경험들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그 저항의 범위는 이야기가 흘러감에 따라 제일 작은 사회인 부부, 좀 더 넓은 부모와 자식, 친척까지 넓혀가고 소식, 육식거부, 그리고 거식에 다다라  죽음을 부른다. 그러나 이 죽음은 단순히 주인공이 더이상 책에 안나옴이 아니라 맥락상 자연과의 합치라고 해석됐다. 주인공이 곧 자연이 된 것이다. 중간중간 책을 보다보면 자연을 묘사하는 소재들이 많다. 그 중에 주인공의 몸에 꽃을 그리기도 하는데 그 부분에서 주인공은 얼핏보면 안정을 찾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것으로 치유되어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현실을 깨닫고 가부장제 사회탈출을 가속화시켰다고도 해석됐다. 
그리고 결국에 그 주인공을 실질적으로 아무도 살리지 못했다. 주인공이 원하는 유토피아는 저 멀리 있는 것. 고로 탈출, 혹은 제일 큰 의미의 저항 -자살-이 행해지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주인공과 완전한 소통이 되는, 도와줄 수 있는 등장인물은 없었다. 그 이유는 모두가 '미쳐버린' 주인공을 제외하고서는 등장인물 모두가 이미 사회구조를 단단히 유지하는 구성원으로 있기 때문이다. 연대를 하려 했지만 실패한 언니 역시 다른 세계의 한계에 부딪혀버린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이 정상적으로 보이고 점점 오히려 나머지 인물들이 미쳐보이기도 한다.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주인공이 그 행동만 빼면 너무도 정상적이다. 이곳은 누군가가 미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야 라고 말하는  것 처럼. 현실의 독자, 작가 모두 같은 이유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는 포기의 의미가 아닌 우리 또한 사회에 저항을 주고 구조를 흔들어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또다른 주인공이, 또다른 언니가 서로 만나고 누군가가 씌운 허상을 벗겨내는 각자 목소리의 색을 내고 특이한 소리를 할지언정 여러명이 했다면 결말은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고 기대해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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