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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번역을 말할 때 흔히 하는 이야기들에 따르면 번역가는 배신자이자 무언가를 늘 잃어버릴 뿐 아니라 문학에 적대적인 존재다. 내가 위의 사례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까닭은 솔직히 내 번역이 조금 자랑스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번역가는 번역을 지적받았을 때 자신의 선택을 옹호할 객관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에 취약하다. 번역가는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완벽하고 완전한 결과물에 도달할 수 없고, 그 사실을 상기하게 될 때마다 쉽게 의기소침해진다. 그럴 때는 번역에는 정답이 없고 어떤 번역이든 무언가 잃기 마련이며, 관점에 따라 좋은 번역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달라 질 수 있다는 따위의 말을 변명처럼 우물거린다.
집에 와서 내 번역이 잃은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실 그 학생의 말은 직역 대 의역 논쟁의 핵심을 건드린 질문이었다. 단어를 고스란히 번역하는 직역이 만드는 특수한 효과를 나처럼 기이하거나 어색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참신하거나 아름답다고 느낄 수도 있다. 문학성과 광기는 사실 같은 것이니까.


97.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홍한별-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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