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kbr님의 서재
  • 여성의 대의
  • 지젤 알리미
  • 15,300원 (10%850)
  • 2021-10-04
  • : 96
언제부턴가 이런 책을 참 읽기가 싫었다. 지금보다 더 야만인 시대에 온 몸으로 싸우고 지지 않은 언니들의 온갖 고생과 괴로운 이야기를 읽는 게 싫었다. 언니들은 지지 않은 것도 모자라 그것을 다 꺼내어 하나하나 기록하고 책까지 써서 우리들에게 주었다. 이 책의 지젤 알리미처럼 심지어 얼마전에 작고하고 나서야 그의 존재를 알고 이제서야 읽는 더 야만인 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이 책의 수많은 고통과 싸움은 단절된 과거가 아니고 지금도, 최소 동시대의 절반 이상은 언니들이 싸운 시간보다 같거나 느린 야만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여성들도 있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면,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같은 삶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내가 있다. 언니들이 몸과 정신, 그리고 마음을 모두 던져 일생을 살았음에도 내가 그 비슷한 세상에서 비슷한 삶을 살았고, 나보다 더 고통스럽게 사는 여성들이 훨씬 많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서 이런 책을 참 읽기가 싫다.

언니들이 이렇게까지 살았어 그런데 너 뭐하고 있어 내 속에서 고함치는 비난이 듣기가 싫다. 날쎈 몸으로 빠르게 뛰어서 얼른 승리를 거머쥐고 싶은데 너무 느리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내 몸이, 마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꿈에서처럼 답답하다.

책의 뒷면에 있다.

“나는 정의가 아닌 것을 참을 수 없어요
이것으로 내 일생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_2019년 8월 <르몽드>와 생애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의 얼굴과 눈빛이 보이는 사진도 있다.

그의 말과 모습을 보고, ⸢여성의 대의⸥라는 제목도 되뇌어보면,
그리고 내 속의 아우성과 응석을 받아주지 않고 책을 읽다보면 어느 새 책은 귀퉁이마다 접히고 밑줄을 긋다가 포기하고 문단을 세로로 묶어 버리기도 한다.
아무 말도 없이 읽기만 할 수가 없어서 내 말도 적어본다.
한 챕터를 그렇게 운동하듯이 읽고나니 활력과 에너지소모가 주고받다가 결국 지쳐서 한 챕터까지 읽고 멈췄다.

대체 이 세상은 무엇이고, 여성이 무엇이길래 이런 여성 이런 인간을 이렇게까지 하게 하는가. 어째서 끊임없이 이 인간을 때리고, 이 인간은 한번도 지지 않고 일어서는가. 몇 치 앞을 내다보는 우수함과 자기자신을 아는 강력한 힘이 이 여성의 대의의 발로인가. 안 우수하고 자기자신을 잘 모르는 보편적인 우매함으로 그저 그 하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안 됐나?
--------------------------------------------------------------------아래는 책 속에 제 울분을 끓이다못해 증발시켜 버린 문장들을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미리 읽고 싶지 않으시면 스킵해 주세요.

“나는 싸우기로 했다. 나만을 위해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싸울 것이다."

”어머니는 종일 우리를 돌보고 집안 살림을 하느라 뼈가 빠지도록 일했다.”

“다른 사람이 번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은 여성에게 내려지는 진짜 저주다.”

“나는 좋든 싫든 내 길을 가기로 했다.”

“자신이 남자든 여자든 내 삶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마음이 무척 편안해지고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 여성으로 태어난 압도적 무게에 저항할 힘을 이 세계에서 끄집어냈다.”

“새로운 삶이 수월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삶의 에너지를 내가 선택한 두 가지 길에 모두 쏟아부었다.”

“세상은 정치적 투쟁에 뛰어든 여성을 어떻게든 배제하고자 수동성, 관성, 무기력을 이용한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나는 다짐하곤 했었다. 두 번 싸워야 한다고. 승소하려면 상대측 변호사를 두 번 이겨야 한다고. 나는 우선 여자로서 상대를 이겨야 했으며, 그러고 나서는 변호사로서 상대를 이겨야 했다.”

“법정 밖의 내게는 남편, 아이들, 가정이 있었다. 나는 상대측 변호사가 잘 정돈된 서류와 함께 노트를 펼쳐 “X 사건, Y 변호사”라고 써놓은 부분에 표시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의 변론 준비는 완료됐다. ㅜ그는 오후 시간이 만족스러웠다. 두 세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준비했다. 이제는 편안한 기분으로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린다. 뭘 먹지? 아이들은 학교 잘 다녀왔을까? 집에 뭐 필요한 게 있나? 이런 것들은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의 아내가 신성한 노동 분업의 원칙에 따라 그 일을 하기 위해 집에 있을 테니.
그가 그러는 동안 나는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변호사인 여성에게 요구되는 모든 일을 하느라 하루 내내 정신이 없었다. 밤이 돼서야 재판 서류를 준비했다. 그러다가 새벽 두세 시쯤 되자 숙면을 취하고 있을 상대측 변호사가 부러워졌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는 지금 휘파람 불며 면도를 하고 있겠군.”
거울을 보니 눈 아랫부분이 거무스레했다. 그래도 커피를 연거푸 몇 잔 들이마셨더니 준비가 됐다고 느껴졌다. 자, 나는 이 재판에도 내 인생과 자유, 인간으로서 명예를 걸었다. 온몸에 활력이 샘솟았다. 의뢰인이 나를 신뢰해서 이 일을 맡겼다고 생각하니 밤을 꼬박 새우며 일했는데도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그래, 나도 준비를 마쳤다."

- 이후 독서에 따라 추가 예정-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