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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 13,500원 (10%750)
  • 2020-11-16
  • : 43,795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소영 독서교실의 김소영 선생님은 어린이책 편집자로 수년을 일하다가 어린이 독서교실을 마련하면서 꼼꼼이 시뮬레이션 했다고 한다. 그 중에 하나가 과연 반말을 쓸 것인가, 존댓말을 쓸 것인가? 그 탄탄한 고민 끝에 존댓말을 쓰기로 하셨다. 어린이 안녕하세요? 존댓말이 어찌나 다정하고 격식있는지. 글로만 보아도 내 마음을 다 뺴앗겼고 나도 어서 어떤 어린이를 만나던 아무 생각하지 않고도 존댓말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며칠 전 독립책방지기이신 여자분이 다짜고짜 처음 본 사이에 반말하는 중년의 남성 때문에 또또 내가 만만하지 라는 반복된 상념에 지쳤다고 했던 말
그런 것도 기억이 났다.
불특정 다수를 대하는 직업이 아닌 나도 수차례 겪어서 너무나 아는 것이고, 나와 같은 한국여자들은 직업불문 한국여자면 다 알잖은가.

존댓말이 몸에 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존댓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서열을 파악하고 어휘를 고르고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다.”

엄마에게 토로했다면 분명 내가 청승맞다고 했을 그런 일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일어났다. 왜 눈물이 날 것 같지 않은 문장에서 눈물이 핑 도는지 모르겠다.
이를 테면 이런 문장.
"아동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동의 의견을 잘 듣고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유엔 아동 권리협약 제12조)


어린이의 말이 인용되는 문장에서는
유유히 물 속에 있는 듯한 느낌, 내 속의 진짜 내가 나와서 말하는 느낌, 정말 딱 내 체온 같은 그런 온도와 마음이 느껴져서 중간중간 저자인 어른과
어린이의 말에
'나'와 '진짜 나'가 왼발 오른발 걸어오며
마지막 장까지 읽은 것 같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좋았기 때문에, 길지 않은 에피소드들을 마구마구 읽을수는 없었다, 참 이상하게도.
분명 귀엽고 순수한 에피소드인데 왜 눈물이 울컥 올라오지. 모든 감정이 눈물로 치환되는 병인가..

책을 다 읽어갈 때쯤 어느정도 소결에 도달했다. 어린이는 이 세상의 약자 중의 약자였다. 나 역시 여성으로서 약자의 정체성으로 인한 울분과 우울이 있는데
더 작고 약한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나의 분노가 마주하는 순간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취미로 학원을 등록할 때 일단 소음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를 방지하기 위해 성인 전문인지 확인하고, 4,50대 남성이 있는지를 꼭 확인하던 내가 보였다.
아이들과 섞여서 배울 수 없다는 묘한 혐오와 나를 혐오하는 덩어리 정체성을 피하려는 혐오 방어.

사실 이 책은 회사 도서실에서 빌려읽었다. 어린이에 대한 귀엽고 순수한 에피소드가 예쁜 꽃다발처럼 잘 묶인 책이리라 생각했고,
그런 꽃은 읽는 순간의 즐거움이고 두 번 보면 시들어 버리는 정말 꽃다발 같은 책이리라 생각하고 빌려 보기로 결정한 거다. 그리고 그 결정에는 정말 10초 이내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 나의 판단력과 편견으로 빌려 읽는 바람에,
다시 읽어야 할 문장들을 위해 접거나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는 직관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어디 옮겨적어야 하는 방법밖에 없으므로 너무 멈춤이 길어지는 탓에 다 내려놓고 읽어나가기만 했다.
그러니까 나는 전파견문록 같은 걸 생각한 거고,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조악했고 어린이를 대상화했나!! 깨달았으며 요즈음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방송국놈들'로 지칭되는 이유를 공감했다. 그 프로그램만 아니었어도 사서 읽고, 마음껏 기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길고 자세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히 기록해둔 페이지는
160페이지 대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 에피소드이다.
계부에 의해 굶김 당하고, 목검으로 수백 차례 맞고 개와 함께 화장실에 갇혔던 어린이. 결국 묶인 채로 탈진하여 복부 손상으로 죽은 어린이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옮긴다.
'어린이의 명복을 빈다. 떠나던 순간에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자비로운 손길이 함께했기를 마음 깊이 빈다. 천국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에서는 어린이가 좋은 음식을 먹고 마음껏 뛰놀며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 있으면 좋겠다."

어린이를 비롯한 이 세상의 어떤 약자에게라도 바치는 기도문이다.
나는 행동이 없는 것은 알맹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슬픔을 목도하고 즉각 할 수 있는 행동은 기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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