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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샤베트님의 서재
  • 림 : 잃기일지
  • 김서해 외
  • 15,300원 (10%850)
  • 2024-09-30
  • : 330

가장 좋았던 작품은 최미래 작가의 <돼지 목에 사랑>이었다. 30센티미터의 길쭉하고 두께 얇은 꼬리를 달고 태어난 미진이 꼬리 때문에 연애에도 실패하고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다가 뜻밖의 재능을 찾게 되는 이야기다.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꼬리를 내놓고 산책로를 달리던 미진은 '호주'의 눈에 띄어 풋살 경기를 뛰게 된다. 동물이 몸의 균형을 잡을 때 사용하는 것처럼, 미진도 꼬리를 활용해 자신도 모르게 무게 중심을 잡아왔다.


'사랑이 뭔지 모르겠고, 뭔지도 모르겠는 걸 하고 싶고, 꼬리는 점점 길어졌다. 나는 딱해.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자기 자신에게 연민이 들 때는 먹는 것을 가장 주의해야 했다. 미진의 곁에는 먹는 것을 조심하라 일러 줄 이가 없었다. 그래서 미진은 아무거나 다 주워 먹었다. 쓴소리, 아픈 소리, 인생에 쥐뿔도 도움 안되는 목소리들을 모조리 주워서 가슴속에 담아 놓았다가 산책하면서 곱씹어 먹었다.'


'꼬리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원인은 뭔지 묻는 윤성에게 미진은 이렇게 말했다. 원래 그랬어. 그냥 있는 거야. 원래부터 그냥 있었다고.'


물론 그렇다고 미진이 천재처럼 경기장을 지배한 것은 아니다. 속도만 빠를 뿐 다른 능력은 부족했다. 경기 후반부에는 체력도 숭덩숭덩 빠져나간다. 그래도 미진은 최선을 다해 공을 향해 달린다. 때로는, 뒤를 돌아 같은 팀 선수들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미진의 가장 큰 변화는 '꼬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것이다. 꼬리가 그냥 그 자리에 원래부터 있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꼬리 탓으로 돌렸던 인생의 문제 중 어떤 부분은 꼬리가 원인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꼬리가 있었을 때도, 본인이 혼자라고 생각했을 때도, 사실은 자신을 사랑해줬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나서 유난히 머릿속을 맴돌았던 문장은 따로 있다.  

'사랑은 좇아가는 게 아니야. 실체도 없는 걸 백날 찾아봐. 힘 빠지고 가랑이만 찢어져. 사랑은 고이는 거야. 콜드브루 알아? 그런 거야.'

책의 맥락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으나 여러 생각이 들게 한 문장이다.


나도 사랑을 좇아갈 때가 있었다. 책 속 미진과 달리 연애 얘기는 아니고, 덕질 얘기다. 무언가에 열과 성을 진하게 쏟아부었다가 식어버리고 나니 인생이 너무 공허했다. 그래서 3-4년 간은 조금만 호감이 가면 그 대상을 좋아해보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잠깐은 불타오르기도 했으나 엔진은 금방 꺼져 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콜드브루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보다 보니까 자연스레 사랑에 빠지게 한 그들을 나는 평생 사랑할 것만 같다. 

덕질 뿐만 아니라, '콜드브루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게 된 친구들도 떠오른다. 책에도 나와 있듯 사랑과 연애가 같은 말은 아닌데 나의 사랑 이야기에 연애 얘기가 포함되는 건 꽤나 뒷일일 것 같다. 인생의 전반부에 그닥 이룬 것도 없고(아직 전반부가 끝났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그닥 진화하지도 못한 나를 소중히 여겨준 사람들이 내게도 너무 소중하다. '만두 만들기'처럼 진득한 사랑을 꿈꿨던 미진이 정작 만두를 나눠 먹었던 대상은 나, 친구, 할머니였듯 나도 그들과 '만두'를 나눠 먹어야지. 




*열림원 서평단을 통하여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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