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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 브레이크넥
  • 댄 왕
  • 19,800원 (10%1,100)
  • 2026-02-05
  • : 8,427

한 때는 군사력을 두고 대립을 해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중국이 미국과 맞서는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빠른 발전이었다. 미국이 두 차레의 세계대전에 참여하면서 엄청난 경제성장을 거두었을 무렵, 중국은 국공 내전과 항일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었었다. 게다가 최종적인 승리자였던 마오쩌둥의 잇따른 자살골로 중국 경제는 그대로 추락하는 듯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은 어느덧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빠른 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며 찬탄하지만, 중국의 발전 또한 그 못지않은 놀라운 속도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텐데, 이 책의 저자는 그 중 중국의 지도층이 ‘공학자들’로 구성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흥미롭게도 중국의 지도부는 거의 전원이 공학자들이다. 중국 경제 발전의 기점이 되었던 덩샤오핑은 8, 90년대 공학자와 기술자들을 정부의 최고위층에 대거 입성시켰다. 그 결과 2002년에는 중국 공산당 최고 의결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9명 전원이 공대 출신일 정도였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칭화대 공대를 졸업하고, 10년 간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다른 지도급 인물들도 다양한 기술대나 공대를 졸업하고 실제 공장 등의 현장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현 주석인 시진핑 역시 칭화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국가 운영의 핵심에 위치한 사람들이 모두 공학자라는 것은 자연히 국가 운영에도 그에 따른 스타일이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사실 한 나라의 경제발전은 시장경제가 아니라 이른바 “개발 독재”에서 출발한다는 건 역사적으로 이미 거의 증명된 사실이다. 중국의 공학 전공 지도자들은 마치 도시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 거침없이 설계하고, 건설한다. 그 결과가 미국의 2배에 이르는 고속도로와 일본의 20배에 달하는 고속철도, 전 세계 다른 모든 국가를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의 태양광, 풍력발전 설비, 그리고 전 세계 제품의 거의 절반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력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민주적인 합의 같은 것은 그리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수많은 민중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팬데믹 사태 당시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었다. 심지어 한 도시(라고 하지만 우리 도시를 생각하면 안 된다. 최소 천 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커다란 지역이다) 전체를 봉쇄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한 자녀 갖기 운동’이 있다.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강제 불임수술 같은 인권유린적인 조치까지 있었다. 이 정도의 대규모의 사회적 실험은 공학자 마인드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것.


반면 미국은 법률가 중심의 국가가 되어버렸다. 소송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이기도 한 만큼, 모든 것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사업은 끊임없는 소송전으로 기약 없이 지체되고, 나중에는 아예 그런 사업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든다. 대규모 공장들도 사라져버렸고, 트럼프가 갖은 협박과 위협을 하며 동맹국들을 쥐어짜더라도,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이 절차적 정당성애 매여서 진취적 기상을 잃어버렸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에 희망이 없는 건 아닌데, 미국 역시 공학의 전통과 유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마천루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도, 복잡한 지하철 노선과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도 모두 미국에 있었다. 물론 이미 법조인들에게 지배되고 있는 미국 정계가 쉽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저자는 미국과 중국 모두 자신들의 약점에 발목이 잡혔다고 말한다. 공학 중심의 나라는 통제와 간섭에 대한 집착으로 사회의 창의성을 억누를 수 있다. 체제를 비판하는 농담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훌륭한 문화적 결과물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법률가 중심의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과정의 정당성에 집착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만 남발하는 지리한 정치적 갈등이 사회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어느 위치에 서 있을까?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만 보면, 철학(김영삼), 경영학(김대중, 이명박), 법학(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이재명) 등 인문계열, 특히 그 중에서도 법학이 주가 되고 있고, 전자공학(박근혜)을 전공한 경우가 한 명 있다.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법학 전공자나 법조인 출신이 66명으로 20%가 약간 넘는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확실히 미국 모델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어느 쪽 하나가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다. 경제발전과 사회적 통합은 함께 가야 할 목표들이다. 문제는 국가운영의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된 이들이 자기 관점에서 벗어나는 발상을 할 수 있느냐 일 텐데, 이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진보계열에서는 ‘당위’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현실을 도외시하는 경우가 자주 보이고, 보수계열에서는 고인 물에서 나는 썩은 내를 좀처럼 해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세계 경제가 출렁이는 시대다. 단순이 이념과 관성에 충실하게 살다간 우리부터 얻어맞고 몰락할 지도 모른다.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장기적인 상황과 단기적인 대처 사이에서 현명한 결론을 찾아갈 수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우리에겐 있을까. 이건 단지 대통령 한 명을 잘 뽑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쉽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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