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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
  • 마크 A. 놀
  • 12,600원 (10%700)
  • 2015-07-16
  • : 188

저자는 현대 교회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고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난 세기 그리스도인의 표준적인(?) 모습은 서양 백인 남성이었지만, 이제 그 비율은 완전히 달라졌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의 수(물론 이 가운데는 다양한 유색인종들도 포함되지만)를 합쳐도, 나머지 대륙의 그리스도인들의 수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20세기 말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은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그리고 책에는 빠졌지만 아시아의) 여성이다.


이런 (전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교회의 구성원 비율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그 내용의 변화도 수반하게 된다. 기독교적 개념이 새로운 문화 속으로 번역되어 들어갈 때,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생활은 북미나 유럽의 그들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저자는 이른바 복음주의 유형의 기독교가 전 세계에 퍼지고 있는 이유를, “지금 여기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지도자를 따르겠다는 결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책의 중반부는 세계 기독교에 미국교회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를 다룬다. 이 역시 익숙한 설명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교회의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리더십을 장악하고, 일종의 영적 제국주의를 형성했다는 비판적 견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조금은 다른 그림을 그려준다.


물론 미국의 영향력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 기독교”가 되어가면서 수많은 적응과 해당 지역의 자치적 리더십들, 새로운 신학적 강조점들이 나타났다. 서구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는 말이다.


다만 이런 인식은 큰 그림을 볼 때에 비로소 갖춰지는 것이고, 부분적으로, 지역적으로는 여전히 조금은 다른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미지를 가져온다. 몸의 어느 지체가 다른 부분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인 미국 교회들 역시 나머지 지체들을 의존하지 않고서도 혼자 제구실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지적은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도, 나아가 그 지역 내의 공동체들 안에서도 귀담아 들어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마크 놀의 글은 언제나 새로운 통찰이 있다. 여전히 미국 중심의 사고, 서구의 신학 중심의 신앙생활만을 유일한 길로 여기는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런 신앙의 전통들(이른바 ‘신학들’)에 공헌과 유익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신학은 (그것이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어느 정도 상황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신학은 계속 발전해야 하는 무엇이고, 단순히 예전 것을 붙잡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보수적 신앙 공동체에서는 이런 생각 자체를 불온하게 여기는 감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금과옥조로 붙잡고 있는 신학적 명제들과 예배의 방식들도 역사적 기독교라는 좀 더 큰 맥락에서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새로운’ 것들이라는 게 난센스다. 결국 우리의 눈이 좀 더 큰 맥락을 보지 못하면 계속해서 그냥 익숙한 것을 최고의 것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또 다른 책 제목처럼, 우리는 “세계기독교인”으로 살아야 한다. 겸손함으로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한 우리가 서 있는 곳에 맞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손질을 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성경에 대한 정직한 묵상과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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