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AI 열풍이 한창 시작되었을 무렵 알파고라는 이름의 바둑 인공지능과 상대한 인간 기사로 (이전에도 유명했지만) 더욱 유명해진 이세돌 전(前) 프로기사가 쓴, 바둑책이다. 뜬금없이 바둑책을 손에 든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가끔 수학책이나 물리학책을 손에 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우연히 바둑에 관한 책이 눈에 띄었다.
사실 나는 온갖 잡기에 능한 게 없는데, 바둑은 전혀, 장기와 체스는 겨우 기물을 움직이는 법을 아는 정도고, 몸을 사용하는 것들, 예를 들면 많이들 하는 당구라든지, 볼링이라든지 하는 것도 즐기지도 않고, 당연히 잘 하지도 못한다. 가끔씩 바둑채널에 대국을 하는 걸 켜 놓긴 하지만, 뭘 알아서가 아니고 그냥 그 조용한 분위기, 가끔 나오는 차분한 해설 같은 걸 화이트 노이즈로 삼아서 다른 일을 하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 나이에 바둑을 배워봐야겠다 그런 건 아니고, 그저 바둑이 어떻게 하는 건지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물에 들어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지만, 백과사전을 읽으며 수영을 어떻게 하는지, 경영의 국제 규칙과 규격 같은 건 습득했던 것처럼). 또, 온갖 전략과 전술이 난무하는 게임 자체가 내 취향이기도 했고.

이 책은 이세돌이 말 그대로 바둑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기초적인 규칙들과 전술을 설명해 주는 내용이다. 딱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 기본적인 용어들에 관한 설명도 있고, 집이란 게 뭔지, 상대의 돌을 잡는 방식, 어떻게 내 돌을 살릴 것인가 등등. 각각의 설명마다 컬러로 된 기보가 함께 등장해서 이해를 돕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책에 이 부분이 빠지면 곤란하다. 곳곳에 독자에게 생각해 볼 질문을 던져서 방금 배운 것을 실제로 써 먹어 보게도 하고.
물론 이 한 권의 책을 봤다고 해서 바둑에 대해 뭔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긴 힘들다. 책에서 예시된 건 대국 전체가 아니라 부분적인 모양이고, 그게 전체 대국에서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는 한참 더 공부가 필요할 게다. 그래도 뭐든 제대로 즐기려면 먼저 어느 정도 알아야 하니까.
퍽 재미있어 보이긴 하는데, 이걸 좀 더 이해하고, 그 깊은 맛을 즐기기 위해 들여야 할 시간이 어느 정도나 될지 가늠이 안 된다. 정확히는 내가 그 정도의 시간을 지금 투입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읽는 동안 잠시 머릿속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책이다. 중간 중간 이세돌 개인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고, 책 말미에 부록으로 붙어 있는 한국 바둑 계보도 재미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