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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 삼체 0 : 구상섬전
  • 류츠신
  • 17,010원 (10%940)
  • 2025-08-28
  • : 26,524

작년 쯤이었나, 갑자기 여기저기서 “삼체”라는 이름이 뜨기 시작했었다. 중국 작각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꽤 유행했었나 보다. 언젠가 한 번 원작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싶었는데, 이제야 손에 든다. 그것도 본편이 아니고 일종의 프리퀄인 이 작품부터. 원래는 본편을 들어가려고 했는데 검색해 보니 또 "삼체 0"라는 게 나오지 않던가. 작가도 같고, “삼체”가 나오기 전에 썼으면서, 후에 나오는 여러 설정들과 인물들도 나온다기에 이 책을 먼저 손에 들었다.



이야기는 한 소년의 생일파티로 시작된다. 열네 개의 초가 꽂힌 케이크를 앞에 두고, 부모님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때, 갑자기 나타난 농구공 크기의 빛 덩어리가 소년의 부모를 단번에 하얀 재로 만들었다. 구상섬전(공 모양의 번개)였다. 그 날 이후 소년이 평생 동안 매달리게 될 연구의 주제가 정해졌다.


통상 번개는 순간적으로 내리치지만, 소설 속 구상섬전은 그 특성이 전혀 다르다. 마치 비누거품처럼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어떤 것을 통과해서 특정한 것만 태워버리기도 한다.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전혀 태우지 않은 채 몸만 재가 되거나, 전자기기의 칩만 태워버릴 수도 있다. 가끔 미스터리 채널에서 볼 수 있는 “배니싱”이나 “자연발화” 같은 사건들이 떠오르기도 하는 특성.


소설은 이 모든 과정을 소년(천이)을 1인칭 주인공이자 관찰자 삼아 진행한다. 원래 그의 목표는 어린시절 목격했던 구상섬전이라는 특이한 현상의 과학적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아름다운 여군 장교 린윈을 만나면서 연구의 방향은 크게 바뀐다. 린윈은 신기술을 이용한 무기개발에 광적으로 몰두하고 있었고, 자연히 구상섬전 역시 무기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좀처럼 실마리는 풀리지 않았고, 그들보다 앞서 이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섰던 이들의 실패담만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천재 물리학자인 딩이가 합류하면서 마침내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나아가 그것을 응용한 무기화에도 성공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는데...


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가까웠던 린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무기의 위력을 증명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충돌과 희생이 발생한다. 더구나 얼마 후 일어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쟁에서 이 무기는 기대했던 것과 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프로젝트가 폐기되나 싶었지만, 결국 작품 말미에 이 연구는 조금은 어이없는 방식으로 전쟁을 끝내는 데 큰 공헌을 한다.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나 구상섬전이라는 독특한 현상이다. 작가는 이 소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현대과학의 최대 발견들 중 하나인 양자역학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실제로 구상점전이라는 현상이 양자역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사실 양자역학은 우리들의 상식적인 생각을 벗어나는 결과를 말할 때가 잦은데, 이걸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서 실감나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또 가공할 만한 무기를 만들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윤리적인 고민을 던져주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무기를 만드는 데 광적인 집착을 하는 린윈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무기를 완성하고 그 효과를 입증하는 데에만 몰두한다. 핵발전소 테러 사건에서 린윈은 그 안의 어린 아이들이 인질로 잡혀있는데도, 모든 생체조직을 파괴할 수 있는 구상섬전 무기를 거리낌 없이 발포한다. 더 큰 위기를 막기 위해서라는 지극히 실용주의적 판단이었지만, 한편으로 자신이 만든 무기의 효과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작품 말미에 린윈이 과거 어머니가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 벌어진 전쟁(1979년) 과정에서 사망한 기억 때문에 그런 집착을 갖게 되었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사실 이 전쟁 자체도 중국이 일으킨 것이고 침략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것인지라, 개인사적으로는 비극이지만 3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해자의 딸이 왜 그렇게 화가 난 건지, 그 분노를 애국주의로 포장하는 과정이 좀 어색하긴 하다.


작품 전반에 걸쳐서 평생을 바쳐 한 가지를 탐구하는 태도에 대한 칭송이 관통한다. 삶의 목적을 잃고 그저 하루하루를 사는 것에 비해서 단연 매력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린윈의 모습을 보면 그 방향이 무엇인지 또한 생의 열정 못지 않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



간만에 침대에 누워서까지 “어슴푸레”를 켜고 읽었던 재미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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