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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
  • 아브라함 카이퍼
  • 10,800원 (10%600)
  • 2020-09-25
  • : 1,651

아브라함 카이퍼의 대표적인 정치 사상 가운데 하나가 영역주권 이론이다. 다양한 자리에서 이와 관련된 발언을 했는데, 이 책은 1880년 자유대학교를 설립하고 했던 개교 연설을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카이퍼는 다방면에서 강력하게 도전해 오는 세속주의의 물결에 강력하게 저항하려 했던 인물이다. 네덜란드는 일찍이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칼뱅주의 국가로 태어난 바 있었지만, 이미 벌써 카이퍼의 시대에는 국가 운영에 있어서의 세속주의적 영향력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특히 카이퍼는 교육 영역에 있어서 기독교적 이념을 반영하는 것을 약화시키는 일체의 시도에 반대한다.(그게 자유대학교의 설립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각각의 영역에 서로 침범할 수 없는 주권적 권한이 있다는 영역주권 이론은, 다분히 이런 교육 기관의 자유를 강하게 주장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학문의 전당인 대학은 국가나 교회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했다. 국가가 대학에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끼칠 경우, 기독교의 독특한 성격은 필연적으로 “여러 종교들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종교중립성이라는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된다. 또 교회가 대학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대학의 학문적 자유가 필연적으로 침해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영역주권 이론은 정치이론이라기 보다는 대학의 자유에 대한 빛나는 선언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





영역주권론은 하나님께서 창조주시라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다. 당연히 이런 신앙적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런 면은 카이퍼의 시대보다 훨씬 더 세속화, 다원화 된 오늘날에는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연설의 말미에 이런 상황에 대한 카이퍼의 의견이 실려 있다. 그는 얼마든지 자신의 주장을 경멸해도 좋다고, 그 또한 칼뱅주의 신조에 따르면 보장된 권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하는데, 바로 당신들이 조롱하고 경멸하는 바로 그 믿음/사상이 과거 (아마도 앞서 말한 독립전쟁을 말하는 듯) 사람들을 위로하고, 영감을 불어넣어, 오늘날 당신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한 존중 말이다. 멋지다. 한국 교회도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때 이 책이 극우집회에서 소문이 나서 판매고가 높아지기도 했다고 한다. 국가가 교회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누군가 영역주권론을 가져댔기 때문이란다. 당시 집합금지 명령으로 교회 대면예배가 중단된 것이 어지간히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그 조치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관해 이견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영역주권론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던 양반들이 교회의 이름으로 대정부 투쟁을, 그것도 한물 간 색깔론 공세와 음모론에 빠져 그런 짓을 하고 있으니 퍽 안쓰러운 모습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교회의 주권은 국가보다 위에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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