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 줬으면 그만이지
  • 김주완
  • 18,000원 (10%1,000)
  • 2023-01-01
  • : 60,785

얼마 전 퇴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관련해서 한 노인의 이름이 자주 언론에 오르내렸다. “김장하 선생”이 그 주인공이었다. 오래 전 가난했던 학생 문형배는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던 김장하 선생에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아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자신의 돈을 가난한 학생들의 공부를 위해 사용하는 일은 치하해 마땅하지만,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독지가 이야기가 새로울 건 없지 않은가. 그런데 관련 이야기를 파면 팔수록 신기한 일화들이 쏟아진다. 그가 장학금을 지원한 학생의 수는 족히 수백 명이 넘는 것 “같고”,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과 일면식도 없는 경우도 많은데다가, 무슨 인사를 받으려 하지도 않고, 아예 얼마나 지원을 했는지 조차 감추고 알리지 않았다는 것.


후에 김장하 선생은 사재를 털어 사립고등학교를 세웠는데, 그가 세운 고등학교에는 회계의 조작이나, 재정의 유용, 계약 부풀리기나 리베이트 같은 일들은 일절 없었고, 오히려 이사장인 선생이 지속해서 사재를 출연해 학생과 교사들을 지원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온 학교를 국가에 기부를 했다는 것. 왜 그런 결심을 했느냐는 질문에, 자신이 어린 시절 돈이 없어 공부를 못했던 일화를 털어놓으며(그의 최종학력은 중졸이다), 자신과 같은 학생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교육사업을 해왔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미담은 아직 끝이 아니었으니... 평생을 운영해 온 한양방의 문을 닫고(그는 이 모든 일을 한약방의 수입으로 충당했다!) 은퇴를 결심하면서, 재산을 지역의 대학에 또 기증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도움을 청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움을 주었고, 교육사업 외에도 언론, 문화, 사회단체 등 수많은 영역에서 사람들을 키우고,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일들에 번 돈을 아낌없이 사용해 왔다고 한다. 이 정도면 클래스가 다르다.





책은 김장하 선생의 일생을 되짚어 보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인상은 서글서글한 면 없이 조금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그 나이대의 경상도 남자라면..) 앞서 서술한 것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데 재물을 아끼지 않는 진짜 부자의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의 가난함 때문에 고등학교 문턱도 넘어보지 못했던 그였지만, 좋은 약재를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전략으로 큰돈을 벌었고, 그렇게 번 돈을 가난의 한을 푸는 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사용했다. 어떤 보답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명성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이름이 더 자주오르내리는 건, 오늘날 그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은 책을 쓰고, 더 큰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더 자주 기억하곤 한다. 김장하는 그런 인물은 아니다. 사실 이 책도 그리 유려한 문체와 구성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것이 의의가 있는 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평생을 드러나지 않게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아온 그였지만, 놀랍게도 그런 그마저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도 오래된 집에서 수수하게 사는 것 자체가 유별나게 티를 내는 것으로 보였고, 그가 후원하던 기관의 정치책을 문제 삼아 색깔론에 빠져 다짜고짜 욕설 전화를 거는 덜 떨어진 인간도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을 겪을 때에도, 선생은 그저 참고 넘어가는 식으로 대응할 뿐이다. 악플 하나에도 속이 상해 침울해지는 나 같은 사람은 감히 따라할 수 없는 경지다. 욕설전화와 그에 앞서 보내온 욕설 문자 따위는 마침 옆에 있던 지인의 도움으로 차단 처리를 했지만, 우리 사회 저런 식으로 정신이 삐뚤어진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의 저열한 언행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더 팍팍하게 만드는 건지 생각해 보게 된다.


요새 유행하는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대신 잔잔하면서 깊은 맛이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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