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종교에서, 특히 기독교에서 여행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강조하면서 시작한다. 그건 상징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사건과 40년 동안의 광야 여행은 민족 형성에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호출된다. 복음서의 예수님과 제자들 역시 끊임없이 갈릴리와 유대 지역을 오고가는 과정에서 복음을 가르치셨고, 바울은 지중해 동부를 반복적으로 여행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편지를 통해 신학적 정리를 이루었다.
여행에 대한 이런 강조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전환되어 이어졌다. 중세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순례라는 위험한 여행을 자발적으로 나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회개와 신적 은혜를 추구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광범위한 여행을 거듭하고 있는 오늘날, 여행의 성격은 다시 한 번 바뀌었는데, 이제 사람들은 개인적인 성장이나 자아실현과 같은 지극히 내적인 동기, 나아가 자기 과시를 위한 관광에 집중하고 있다.
당연히 이런 관광으로는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기 힘들다. 저자는 그 가장 큰 이유가 여행자와 현지인 사이의 권력의 격차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행자는 돈을 지불하고 현지의 자원을 가져가거나 훼손시키고, 이 과정에서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 무엇보다 현지인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 전통을 상품화하도록 부추긴다.
이건 여러 형태의 종교 관광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소위 단기 선교나 성지 순례라고 불리는 많은 종류의 종교적 여행들에서, 여행객은 현지인들보다 권력의 우위에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걸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말이다. 개인적으로 단기선교 과정에서 들었던 뭔지 모를 불편함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주는”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에 기인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에 관해 “자신이 해결책 일부가 되기에 앞서 자신이 어떻게 문제 일부가 되었는지 깊이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전히 기독교 신앙에서 여행의 모티브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한 집을 짓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시간과 자리는 여행지에서 보내는 일정일 것이다.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 뽑아버릴지 모르는 텐트의 고정못을 마치 보물처럼 여기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야곱이 파라오 앞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는 평생 나그네로 사는 사람들이다.
책의 저자는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약자들의 위치에 서보지 않는 종류의 여행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화나 도전을 줄 수 없다고 보는 듯하다. 모든 사람들이 나그네로 살지만 그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진정한 나그네의 입장(연약하고,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구해야 하고, 무엇인가를 비는 입장)에 서 볼 때에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는 말로 보인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떠나는 종교 관광을 떠올려 보자. 여행 내내 무슨 성경 이야기가 나오고, 가끔 기도를 한다고 해도 아마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결국 돈을 내고 현지의 자원을 소진시키는 일에 동참하는 소비자(Consumer, 소진시키는 사람)로 다녀오는 것뿐이라면, 그저 휴대폰 사진첩 속 자랑용 여행이었을 뿐일 게다. 예수님이 함께 하셨던 사람들과의 어떠한 교류도 없다면, 굳이 그 비싼 돈을 들여서 온갖 환경오염과(비행기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어마어마하다) 자연파괴, 쓰레기 생산을 일으킬 이유가 뭐란 말인가.
진정한 순례란 무슨 유명한 건축물이나 자연물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은혜와, 특별히 그 은혜를 여전히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는 약하고 가난한 이들과 (우리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가 되어 보는 것, 과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런 경험을 했던 자리를 밞으면서 동시에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여행이라는 주제에 관한 본격적인 인문학적, 신학적 해석을 담은 책. 물론 정치, 경제적인 부분에 좀 치우친 면이 있지는 않나 싶지만, 그래서 오히려 신학적인 면이 좀 밀려나지 않았나 싶긴 하지만, 그 부분은 읽는 사람이 어느 정도 감안해서 읽으면 되는 부분이다. 분명 좋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