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신앙 사이의 연결점을 탐구하는 책은 제법 여럿 나와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도 그런 종류의 책 가운데 하나다. 사실 책 초반의 전개는 여느 책들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직업, 일이라는 것은 소위 영적인 무엇에 비해 열등한 무엇이 아니라는 강조와 함께(1장), 구약과 신약 속에서 일이 어떤 식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지를 언급한다(2-3장).
이 책의 독특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건 4장부터이다. 책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성경의 언급을 우리의 인생 전반에 걸쳐 필요한 지혜로 연결시킨다. 인생에는 출발점과 도착점이 있다. 성경에 따르면,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우리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건 이 출발점과 종착점 사이를 어떻게 걸어 가느냐이고, 이 기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일터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성경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꽤 흥미로운 논리다.
5장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라는 축으로, 제자로서 사는 것과 일터에서 우리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 사이의 연결지점을 살핀다. 흔히 오해되는 것처럼 제자도는 영성에 관한 일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영역 전체를 포괄한다. 제자는 타락한 세상 속에 살면서, 타락 이전의 모습은 어땠을 지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면서 자신이 있는 곳을 회복시켜 나가는 사명을 지닌다는 것.
하나님 나라라는, 기독교 세계관의 중심 주제와 연결되면서 일의 성경적 의미가 무엇인지 잘 정리해 내고 있는 책이다. “일은 소명이라는 장갑에 생동력을 불어넣는 손과 같다”는 저자의 말은 일의 중요성에 관한 저자들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일을 제대로 해 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 가운데 담긴 소명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해봤자 되지 않는다는 식의 패배주의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성속이원론은 그렇게 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 안에 날마다 깊은 자국을 남긴다. 이를 타개할 수 있는 건 절망을 이기는 희망, 그리고 그 희망의 목적지인 하나님 나라, 그 나라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붙드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강조이다. 여전히 하나님 나라는 우리 시대에도 중요한 주제인 것 같다.
작고 얇아서 부담이 적다. 이 주제에 관해서 처음 시작한다면 이 정도 책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