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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 야망계급론
  •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 19,800원 (10%1,100)
  • 2024-03-02
  • : 4,520

이 책은 우리의 소비행태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를 담고 있다. 소비는 단순히 필요에 의해 사용되는 차원을 넘어 ‘지위재’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즉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에 “명품”이라는 말로 잘못 번역되는 “Luxury", 즉 사치품이다. 수백만 원씩 하는 고가의 가방에 물건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운반하는 데 시간을 절약해 주거나 힘이 덜 들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때로 빚까지 지기도 한다(신용카드 할부는 빚이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장치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명 그런 종류의 사치품들을 몸에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런 소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인 여유가 있음을 과시하는 중이다. 그런데 세계의 경제적 성장이 전반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새롭게 ‘중간계급’이 떠오르게 되었다. 이들이 이전의 상류층이 전유하던 사치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물론 가벼운 결정은 아니라도) 경제력을 보유하게 되면서, 사치품 그 자체는 예전과 같은 ‘지위’를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여기에서 이 책의 저자가 꼽는 야망계급이 탄생한다. 새로운 시대의 상류층, 즉 “귀족”이 되고 싶었던 그들은 다시 한 번 소비의 형태로 지위를 드러내고자 한다. 물론 여전히 고가의 사치품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보여주려는 이들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좀 더 힙한 방식이 사용된다.


그들이 선택한 새로운 지위재는 엄청나게 비싸거나 화려하지 않다. 물론 보통의 물건들보다 값이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값은 아니다. 대신 그것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 내가 이런 것들을 골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깨어있음을 보여주는 것들을 소비하는 것이다.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서너 배 비싼 유기농 달걀이라든지, 일반 우유 대신 아몬드 우유를 마시고, 아이에게 축구 대신 하키를 가르치고 하는 행위들이 그런 예라는 것.


여기서 책에 아주 흥미로운 문장이 나오는데, “맛대가리 없는 슈퍼마켓 토마토를 먹는 건 정말 ‘멋대가리 없는’ 짓이다. 그러나 똑같이 맛없고 물만 많은 토마토라도 그게 토종 토마토라면 ‘진짜’ 맛이 된다.”




 

사회학 연구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종류의 야만계급적 소비의 예를 보여준다. 물론 책에 등장하는 예들은 대개 미국이나 유럽 쪽의 사례들이지만,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얼추 맞아들어 간다. 소위 깨어있다는 티를 내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대표적인 것이 “이념적 채식주의”나 “극단적인 환경주의” 같은 것들이 아닐까도 싶고.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사치품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저자는 “소박해지려면 우선 충분히 부자여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힙한 소비를 위한 정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소비의 방식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자 한다는 면에서 그들 역시 물질주의적 사고에 여전히 매어있는 셈이다.


저자는 “물건을 아무리 사도 우리가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고 결론짓는다. 무엇인가를 구입하는 행위로 자신의 지위와 성취를 과시하려는 태도는, 자신의 꽁지깃털의 화려함으로 암컷을 유혹하고자 하는 수컷 공작새와 그 수준에서 별반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이들 야망계급의 욕구는 그들이 겉으로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의 정의와 올바른 질서의 해소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면에서 위선적이기도 하다. 그들이 하고 있는 실천이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선택의 기회조차 없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


물론 대안적 소비라는 게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사치품으로 온몸을 두르는 허영심보다는 분명 나은 면도 있다. 그러나 결국 소수만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으로 사회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애초에 그런 목표도 없이 그저 자신이 깨어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소비로 선택한 것이라면 그 정도의 의미도 없을 테고.



독특한 개념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다양한 연구조사 결과들과 수치들이 언급되지만, 이 부분의 전문 연구자가 아니라면 그런 것에 얽매일 필요 없이 전반적인 논지만을 좇아가며 읽어도 충분하다. 어떤 구체적인 주장까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라 살짝 아쉽지만, 뭐 사회학 연구라는 게 현실을 나름의 논리로 잘 분석한다면 그건 또 그대로 의미가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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