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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소리
  •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 윌리엄 T. 캐버너
  • 11,700원 (10%650)
  • 2019-10-01
  • : 458
윌리엄 캐버너가 “급진 정통주의로 알려진 신학 운동을 대표하는 학자 중 한 사람”이라는 저자 소개를 참고할 때, 3장으로 간략하게 구성된 이 책은 ‘급진 정통주의’ 신학의 팸플렛처럼 읽힌다. 저자의 주장은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1)그리스도교와 교회가 자신들의 이야기(mythos), 곧 구원론에 기초해 있듯이 근대 국민국가도 마찬가지로 자유주의라는 이야기(mythos)에 기초해 있다. (2)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이야기와 달리, 자유주의의 이야기는 ‘위장된 신학’이자 “그리스도의 몸의 거짓 사본”이다. (3)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정치적 상상의 지평을 확장하여 국민국가가 구획해놓은 틀을 벗어나, 성찬을 통해 초국가적이며 종말론적인 공간을 빚어내야 한다.
윌리엄 캐버너의 ‘성찬의 정치학’이 비현실적인 이상론에 머물지 않고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까닭은 국민국가가 자유주의라는 ‘거짓된 구원론’에 기반하여 성립한 체제임을 드러내보이기 때문이다. 국민국가는 ‘물리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한 기구’라고도 정의되듯이 폭력의 산물이다. 저자는 16세기 유럽의 종교전쟁이 종교적 문제로부터 촉발된 것이 아니라 교권으로부터 분리되고자 하는 세속권력의 충동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이며 국가가 지닌 폭력성을 논증한다. 이렇게 성립된 국민국가는 그 속에 뿔뿔이 흩어진 개인들을 얼기설기 엮어 집어넣었으니, 국민국가와 이를 추동한 자유주의의 구원론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맞서’, 그리스도교는 성찬을 통한 참된 구원론을 제시한다. 그리스도교는 전례 안에서, 전례의 핵심인 성찬을 통해서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로써 이루어지는 구원과, 이를 통해서 구현되는 초국가적이고 종말론적인 공동체를 몸으로 드러낸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가 기존의 국가, 사회를 회복시키려거나 그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가 아니다. 기존의 국가, 사회에 ‘맞서’ 서고자 한다. 근대 이후 사적 영역으로 퇴보한 그리스도교의 상황이 세속 세계에서 한구석이라도 차지하고자 ‘참호전’을 치르던 것과 유사하였다면, ‘급진 정통주의’는 도발적인 질문과 함께 전선을 새롭게 한다. 저자는 “국민국가와 자유주의가 하나의 이야기(mythos)라면, 그리스도교와 자유주의 중 어떤 이야기(mythos)가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느냐”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전선을 옮기게 되면 신앙의 실재성, 합리성에 관한 논의들은 사소해진다. 같은 맥락에서 ‘성찬의 정치학이 과연 실제적인가’ 하는 물음도 적절하지 않다. 우리가 이야기 속에 살고 있고 이야기가 우리를 형성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질문은 ‘어떻게 그리스도교의 이야기에 머물며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에 저항할 것인가’로 옮겨진다.
자유주의를 “그리스도의 몸의 거짓 사본”이라고 규정하는 대담함과 그리스도교가 진정한 구원론이라는 저자의 주장에서 본래 신학이 지니고 있던 총체성과 급진성을 보게 된다. 최근 신학에서 전례에 대한 강조가 이루어지는 흐름도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감을 잡게 되었다. 이 책은 어느 정도 근대 유럽사와 정치철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읽기에 수월하겠지만 서론과 ‘옮긴이의 말’만으로도 책의 논지를 이해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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